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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4.4 만세운동 주도한 문용기 열사는 누구?

등록일 2009년10월03일 17시18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익산4.4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순국하신 문용기 열사를 기념해 지난 1949년 4월 29일 시민들이 뜻을 모아 순국 현장인 익산 주현동 115번지에 세워진[순국열사비]. 우리나라가 일본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한 3.1운동 제90주년을 맞아 우리 익산에도 주목할 4.4 만세운동과 이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문용기 열사가 있다.

1878년 익산시 오산면 관음부락 태생인 문용기(일명 문정관) 장로는 남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24세 때 영명학교 한문교사로 부임한다. 이후 전남 목포와 함경도 갑산 등지에서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을 펼치다, 3.1운동이 벌어지자 귀향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중 41세 나이로 순국했다.

그는 남전교회 교인으로 도남학교의 교사로 그의 모친의 대대로부터 여러 친척들이 남전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현재 주현동 105-19번지에 있는 순국열사비는 1919년에 벌어진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출신지인 익산군 오산면 소재지에는 순국열사기념비, 익산역 광장에는 삼일운동기념비가 각각 세워졌다. 1977년에는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됐다.

이 만세운동을 주도한 남전교회는 오산면 남전리에 소재한 교회로 1897년 10월에 세워진 익산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당시 익산 지역은 김제평야와 함께 일제의 식량수탈의 거점지역이었으며 구시장(현 남부시장) 대교농장에는 곡식창고가 있었다.

익산 4.4만세 운동은 동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의 독립만세 시위사건과 같은 맥락의 운동이다.

익산 구시장(현재 남부시장) 대교농장 앞에서 당시 남전교회 성도였던 문용기 장로, 박영문, 장경춘, 서정만, 박도현 등 성도들과 교회에서 운영하던 도남학교 학생 등 200여명이 함께 시작했으며 장날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합류 대규모 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

장날인 4월 4일 정오에 비밀리에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눠주고 시위대는 장터 네거리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본군은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고 곤봉과 갈고리로 무장한 수백 명의 소방대원과 농장원들 까지도 시위 군중들에게 닥치는 대로 폭행을 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문용기 장로 등 6인이 일군경에게 항거하다 그들의 칼에 쓰러졌고 수십 여 명이 부상당하였으며 39명이 검거되었다.

1919년 전주지역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던 부위렴 선교사는 ‘한국의 독립운동’이라는 보고서에서 남전교회의 교인들의 4.4만세운동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익산 4.4만세운동은 1949년 당시 이리 시민 일동 명의로 순국열사비를 건립하여 지금까지 보존하여 오고 있으며 이승만 대통령이 높이 평가하여 직접 친필로 순국선열비문을 써서 하사하였고 기념비는 현재 익산 남부시장에 세워져 있다.

전후면의 아래쪽과 후면의 많은 글자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데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이 몰락될 때 생긴 일이라고 한다. 이 비석 외에 오산면 사무소 안에도 순국열사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의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지난 2002년 익산시는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여 주민과 학생들에게 역사교육의 장 및 편안한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익산 독립운동 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익산시와 익산보훈지청이 후원하여 3.1절 즈음에 3.1절 기념행사 및 4.4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리고 있다. [자료:익산시 제공]

 

 

소통뉴스 이백순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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