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대중문화의 거장 故(고) 김민기의 고향인 익산시가 고인이 한국문화예술계에 남긴 큰 족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모 공원 조성에 나선다.
24일 익산시에 따르면 한국 포크 음악과 민중 음악의 선구자라 불렸던 고(故) 김민기를 기리기 위해 지역 예술인과 함께 추모 공원 조성을 논의한다. 위치와 공간 등은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할 수 있도록 지역 예술계와 논의할 예정이다.
아침이슬'과 '상록수'의 작곡가 겸 가수 김민기가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다. 위암 4기로 투병 중인 상태에서 최근 폐렴까지 겹쳤다는 것. 향년 73세다. 24일 발인식 이후 옛 학전 자리에 들러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유홍준 교수 등 추억을 함께한 이들의 마지막 배웅을 받으며 영면에 들었다. 유해는 천안공원묘원에 봉안된다.
김민기는 1951년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했지만 1학년도 채 마치기 전에 붓을 놓고 통기타와 마이크를 들었다.
그의 가수 생활은 엄혹한 시대에 맞선 저항의 역사였다. 꽃 피우는 아이, 늙은 군인의 노래, 상록수 등 그의 노래들은 내놓는 족족 금지곡이 됐다.
특히 그의 상징과도 같은 곡 ‘아침이슬’(1970년)은 대한민국 음악사에서 이 만큼 고초를 겪은 곡이 없다할 정도로 탄압을 받았다. 처음 건전가요로 지정된 이 곡은 2년 만에 유신 정권 하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아침이슬’ 등 10곡을 담아 1971년 발표한 첫 음반 ‘김민기’는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아침이슬은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군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저항정신을 되새기는 대표곡이 됐고, 이후 그는 ‘상록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며 시대를 상징하는 가수로 거듭났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농사를 짓던 1981년에는 전북 지역의 연극패, 노래패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제작했다.
1991년 가수의 길을 내려놓고 소극장 학전과 극단 학전을 세운 그는 연극 연출가로서 30여 년간 문화 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학전은 한국 문화예술의 산실이며, 대학로의 상징과 같은 공간이다. 그는 이곳에서 한국 뮤지컬역사의 기념비적 창작 작품 ‘지하철 1호선’을 만들었고 이 작품은 1994년 초연 후 지난해까지 8000회 이상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에 출연했던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조승우 등은 연기력을 인정 받아 기라성같은 대배우가 됐다.
포크 유명 스타들도 이곳을 거쳤다. '가객' 김광석은 이곳에서 1000회 공연을 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여행스케치, 박학기, 윤도현, 장필순, 권진원, 김형석 등이 이곳 무대에 섰다.
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김민기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지역 예술인과 시민들은 추모의 뜻을 전하며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익산시는 지역 예술계와 추모공원 등 고인을 기릴 수 있는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지역 출신 예술인이자 한국 문화 예술의 상징과 같은 분이었다"며 "우리 시대에 영원한 청년 심어준 고인 추모할 수 있는 공간 조성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