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준엽(‘시민을 위한 여행’ 저자)
[특별기고] 22대 총선의 해 2024년 시대정신은?
작가 김준엽(‘시민을 위한 여행’ 저자)
시대정신은 당대의 상황과 요구를 표현하는 철학이나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때론 당대의 가치관을 뛰어넘어 선행하기도 하고, 과거의 철학적 결과물을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한국사회도 시대마다 그 시대의 요구를 담은 시대정신이 등장했습니다. 5·60년대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만들어 낸 ‘멸공’과 ‘보릿고개 극복’이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전후 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70년대엔 ‘남북한 간의 체제경쟁’과 ‘산업화’와 ‘경제성장’ 등이 시대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80년대는 20년 넘게 지속되는 군부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저항인 ‘민주화운동’이 시대정신이었습니다. 90년대 이후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밀려온 ‘세계화’는 그 운명이 길지 않았지만, 한 시대를 가로지르는 시대정신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90년대 후반 IMF 외환 위기기를 겪은 후 2000년대에 들어선 한국의 시대정신은 ‘정보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세기 한국의 운명이 걸린 사회적 합의였고, 세계 최고 속도의 인터넷망이 세계 최고 속도로 전 국토에 매설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화와 산업화가 동시에 성공시키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 있는 2024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며, 여야 각 당은 각각의 시선과 이념을 시대정신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당은 ‘운동권 기득권 청산’, 야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2주간 변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두 개의 시대정신이 국민 선택의 기준이 될 듯합니다. 그런데 정당이 내세우는 시대정신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와 참여를 끌어내려는 표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4년 오천삼백만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2024년 정부에게 시대정신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저는 ‘지방분권·균형발전’ 강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 미래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인 ‘저출산’, ‘고령화’, ‘부동산’ 등이 초 집중화된 수도권 비대화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70년대 이후 본격화된 산업화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수도권 집중은 이제 효율성이 아닌 거의 모든 사회문제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농촌의 초고령화는 이미 오래된 이야기고, 수많은 지방 중소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소멸 위기를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수도권은 어떤가요? 좁은 공간에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밀집하다 보니, 교통, 주거, 환경 등에서 유발되는 헤아릴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좋은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든 청년들은 높은 부동산 가격과 생활 물가에 결혼을 포기하고, 이는 저출산으로 이어져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만들어 냈습니다. 수도권 중년의 삶은 사교육비와 금융비용으로 노후를 준비할 한 치의 여유도 없습니다. 이뿐입니까? 한때 지역 거점 대학 역할을 수행하던 지방 국립대학엔 미달이 속출하고, 수많은 지방 사립대학은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서울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근 들어 취학아동 감소로 폐교되는 초등학교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주권자의 가장 큰 행사인 선거는 어느 선거든 경중을 가릴 수 없이 중요합니다. 이번 선거 또한 이전 어떤 선거 못지않게 중요한 선거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개되는 선거 과정을 보면, 과연 주권을 위임하는 국민의 미래를 위해 적합한 의제가 제시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여야가 미래를 위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당은 ‘세 자녀 대학 등록금 면제’, 야당은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등 국민의 삶을 위한 각종 정책을 발표하고 실현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공당이라면 세세한 민생 공약도 준비해야겠지만, 국민의 백년대계가 걸린 거시적인 비전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촛불 시민 항쟁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개헌’을 선언하고, 정부의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결국, 대통령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문제로 논란 끝에 좌절되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선택은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는 2003년 재정자주권, 자치입법권, 주민투표제, 보충성의 원리 등이 명시된 지방분권개헌을 실현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앙집권 역사가 길었던 프랑스의 지방분권개헌은 앞으로 미래 민주주의에서 지방분권의 의미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 역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오랜 중앙집권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경험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4년 6월 구성될 22대 국회는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 백년대계를 좌우할 지방분권개헌을 실현하는 역사적인 국회가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