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익산의 미래, 그리고 관광과 여행
[특별기고] 김준엽(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관광은 보기로 한 것을 보는 것이고, 여행은 현재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입니다. 관광은 과거의 판단을 기초로 하고, 여행은 현재와 미래의 판단을 기초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광과 여행이라는 두 종류의 인간 행동 양식 즉, ‘이동’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인류는 지역을 이동하며 진화됐습니다. 곧 기후조건과 식량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이동해 왔으며, 그 결과 오늘날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분화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최초 인류가 그 기원으로 인정되는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동하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면 현재 지구엔 동물과 식물만 가득한 동물의 왕국이 됐을 겁니다. 결국 인류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관광과 여행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규정지어 왔던 것입니다.
둘째. 인류 역사 발전의 핵심 중 하나는 이동 수단의 발달입니다. 선박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작된 대항해 시대는 인류 문명사의 대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존재조차 모르고 지내던 새로운 대륙이 발견되고, 그곳에 우리와 피부색, 언어, 관습 등이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지리상 발견이 식민 지배와 노예무역, 자원 수탈이라는 야만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종족의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21세기 들어 본격화된 정보화 시대는 인간 상호 간의 교류와 연대를 기반으로 합니다. 정보화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정보의 이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거대한 정보망에 수많은 국가와 인종, 언어가 연결되고, 분화되며, 그동안 인간에 의해서만 수행돼 오던 노동을 위협하는 수준에 달해 있습니다. 인간이 생산하고, 가공하는 정보의 원활한 이동이 정보화 시대의 필수적 생존 조건이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21세기는 ‘정보’의 관광과 여행이 인류 생존을 보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에 태어나서 50년 이상 살아온 사람에게 익산하면 떠오르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은 ‘미륵사지’를 이야기합니다. 학창 시절 국사 또는 지리 수업 시간에 들어본 기억을 더듬어 가며, 미륵사지를 특정합니다. 그런데 과연 미륵사지라고 답한 사람 중 미륵사지를 방문해 봤나요? 라는 질문엔 수치는 모르지만 매우 적은 사람들만이 미륵사지에 방문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많은 사람이 익산하면 떠올리는 ‘미륵사지’를 어떻게 설명해 내느냐에 따라 익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날 것이기에 백제 최고의 석탑에 관한 이야기를 양질의 콘텐츠로 생산해 내는 건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불교에 등장하는 ‘도솔천’은 미륵이 살고 있는 정토를 의미합니다. 미륵은 도솔천에 살다 민중을 번뇌와 고통에서 해방해 주는 존재입니다. 민중 대다수가 천형 같은 신분 질서 때문에 고통받던 시대에 미륵의 존재는 그들의 유일한 해방구였습니다. 미륵은 ‘미륵보살’의 줄임말로 내세에 성불하여 부처로 다시 태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 사바세계 중생을 구하는 미래의 부처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미래의 희망으로 현세의 어려움을 극복해 보려는 민중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경제와 민주주의 위기로 고통받는 대한민국 국민이 익산의 유적지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미륵의 참뜻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