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은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축적된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에 발생할 일을 예측하고 적절한 행동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정의 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일상생활 그 자체가 기획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의 종류는 많이 있으나 일반적·개인적 차원의 문제해결의 과정, 조직적·관리적 차원의 관리기능, 사회적·국가적 차원의 사회변화 및 국가발전의 도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역문화기획’은 한 지역 사회의 문화적 요구를 진단하고 그 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을 해 나가는 구조화된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써 사회적·국가적 차원의 기획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역문화기획이 갖는 문화적 관심사는 그 범위가 대단히 넓을 수밖에 없으며 지역사회 전체의 문화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된다. 따라서 지역문화기획을 위해서는 예술, 인문, 축제, 유물보존, 지역사회 개발, 사회복지, 야외공간개발, 경제개발 등을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종합적 지역문화기획’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역문화기획은 기획 대상 지역에 대한 인문·사회적인 면을 포함한 총체적인 이해가 요구된다. 이러한 부분이 충분히 검토되어지지 않은 기획의 경우 차후에 소모적 논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으며 해당 지역에 심각한 피해와 후유증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역을 대상으로 한 문화기획을 할 때에는 다방면에 걸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데 최소한 다음의 몇 가지만은 반드시 고려해야 될 것이다.
☑ 생명의 연대성에 기초한 문화기획
과학문명은 시공간적 거리를 좁혀 놓아 버렸다. 물리적인 공간의 축소는 사람들 간의 사이를 더욱 벌려 놓아 버렸고 확대된 공간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소외되고 왜소해져 버렸다. 문화기획은 이와 같이 현대사회가 가져다주는 인류의 존재론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 기획되어야 한다.
☑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문화기획
현대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개체주의(個體主義)는 모든 사물들을 고립된 존재로 보고 상호 의존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개체주의는 인간, 자연, 사물, 정신 등의 모든 단위들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며 인간을 모든 것들로부터 소외시켜 버린다. 지역문화기획은 해당 지역사회의 문화적 필요와 요구에 민감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이 다른 것과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각자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 상실된 아우라를 되찾는 문화기획
아우라(Aura)는 사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말하며, 예술 작품을 말할 때에는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정체성과 진품성(眞品性)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발달된 과학기술은 자연적 사물이나 예술작품을 쉽게 복제해 내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복제가 가져다주는 일시적인 쾌락에도 불구하고 진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유일한 그 어떤 ‘분위기’를 그리워한다. 가령 우리는 복제된 DVD나 CD 같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하여 뮤지컬이나 연극 혹은 판소리 등을 감상하면서 그 작품들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출연자들의 숨소리나 얼굴 표정 등이 실제 공연 현장에서 만드는 고유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따라서 문화기획을 하는 입장에서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되찾아 종교성·초월성·영원성 등을 느낄 수 있는 기획이 되도록 해야 된다.
☑ 지역별 차별성 있는 문화기획
마셜 맥루언(M. McLuhan)에 의하면 도시 사람은 뜨겁고 시골 사람은 차가운 매체이다. 여기서 말하는 매체란 ‘인간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확장물로서 예컨대 의복, 주택, 돈 등과 같은 것들이다. 뜨거운 매체라 함은 단일한 감각을 고밀도로 확장시키고 이용자의 참여도가 낮은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참여도가 높고 저밀도인 것은 차가운 매체이다. 전화는 라디오에 비해서 귀에 전해지는 정보량이 적어서 듣는 사람이 채워야 하기 때문에 차가운 매체라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 있어서 기획의 대상이 되는 매체와 수단의 매체를 동일한 것으로 정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전북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도시와 농촌이 혼재해 있다. 도시 지역에는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차가운 매체 계열로 문화기획을 하고 반대로 농촌 지역에는 정보의 밀도를 높일 수 있는 뜨거운 매체 형태로 문화기획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기획
지역문화기획은 결국 해당 지역 주민의 고유한 잠재능력 개발을 통한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해당 지역의 주민을 배제한 문화기획은 민원을 발생시키고 정쟁(政爭)을 유발시켜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한다. 지역문화기획은 주민과의 충분한 교감 속에서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전개 되어야 한다.
☑ 편익성(便益性)을 키우는 문화기획
공공부문에서 행해지는 문화기획은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주민들에게 사회적 편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야 한다. 대부분의 문화기획은 지역의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그러나 사회 편익성들은 개별적으로 작동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다양한 편익들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기획이 되도록 해야 된다.
위에서 언급한 지역문화기획은 좁은 의미의 기획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서의 기획은 계획수립 단계에서부터 집행, 평가, 통제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며 좁은 의미의 기획은 계획수립 단계만을 가리킨다. 기획에 의한 집행 및 사후 평가 등은 물론 중요한 과정이지만 기획의 핵심은 일관적이고 독창적인 콘셉트(concept) 설계 과정이 포함된 계획수립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콘셉트 설계가 이루어지지 못해 좌초되는 많은 문화기획을 볼 때마다 기획에서 이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하게 된다. 기획 중에 포함된 세부 프로그램이 잘못 되었으면 차후에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콘셉트 설정이 올바르지 않은 경우에는 기획 자체의 존폐 여부와도 직결되기 마련이다. 제대로 된 콘셉트 설정에 따른 성공적인 지역문화기획을 위해 필자가 제시한 ‘지역문화기획의 전제 조건’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