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RSS
맨위로

너희가 천년의 차 맛을 알어?

미륵사지 다기(茶器)

등록일 2012년10월16일 17시53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빠름, 빠름, 빠름’을 외치는 세상,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차(茶) 한 잔의 여유가 그립다. 우리 선조들은 차를 마심으로써 심신을 건강하고 정갈하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차문화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수양다도로 발전되었다. 특히, 백제는 고대국가 중 차나무 재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 차 문화가 발달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익산 미륵사에서 차를 언제부터 어떻게 마셨을까?

차를 마시는 다기(茶器)와 문화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다기(茶器)들을 통해 그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또 일본의 '동대사요록'에 백제의 귀화승인 행기(668~749)가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어 7세기 이전에 차를 마셨음을 알 수 있다.

미륵사지에서는 통일신라 말기의 당나라 청자완, 백자기, 고려시대에는 송나라 백제완, 백자 청백자 등 중국자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그 중 일상용기인 다기로 보여 지는 완(碗), 접시 등이 비교적 많다.

이는 통일신라 말기부터 불교 의례에 차를 공양물로 사용하고 선종 계통에서 수행방법의 하나로써 차를 마시는 것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차를 정신을 맑게 해주는 음료로 생각하여 수행 방법의 하나로써 차 마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또한 차는 향, 등(燈), 꽃, 과일, 쌀과 함께 부처님께 올리는 여섯 가지 중요한 공양물 중 하나이다. 차는 감로다(甘露茶)라고 해서 부처의 법문이 만족스럽고 청량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다기 중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중국 당과 북송에서 수입된 다기는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다. 그러나 당시 다기의 전형적인 완과 접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된 완, 대접, 접시, 잔, 병, 잔 받침과 차를 잘게 부수는 철제 다연(茶碾), 조선시대는 분청 잔과 접시, 차를 보관하는 소형 호, 백자 대접과 접시, 납석제 주전자 등이 있다.

특히, 시기를 달리하여 완벽하지 않지만 완, 차 잎을 가는 철제다연, 백자 다식 접시, 차를 보관할 수 있는 목이 긴 병 등 다기세트를 통해 당시 차 문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차를 마시는 방법은 엽전 모양의 차 덩어리(병차 餠茶)를 다연으로 갈아서 그릇에서 우려낸 다음 따라 마시는 병차법(餠茶法)과 차 덩어리를 갈아 완 또는 대접에 넣은 다음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점다법(點茶法)이 있었다. 차와 함께 다식을 먹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는 육식을 하지 않는 스님들이 깨, 콩 등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했을 것이다.

이로서 차는 6세기경부터 마시기 시작하여 고려시대를 거쳐 미륵사가 폐사되는 조선 중기 1600년을 전후한 시기까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익산에는 우리나라 최북단 야생차 자생지가 있다. 바로 북위 36도 03분, 동경 126도 53분에 위치한 웅포 야생차밭이다.

또한 해마다 10월 중에 전통차와 세계의 차향과 문화가 어우러진 ‘2012 익산국제차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최신뉴스광장

전체 뉴스종합 10대핫뉴스 오피니언

포토뉴스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