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마구류 '편자와 재갈'
익산 미륵사지는 분명 사찰유적임에도 고려시대 건물지에서 마구와 무기류 유물이 다수 발견되었다.
1980년대 미륵사지 발굴정비 과정에서 출토된 마구류에는 재갈 멈치, 앞이 트여있지 않은 주머니처럼 생긴 호형등자, 말편자, 마차류의 바퀴 회전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철차관, 청자 마상배 등이 있다.
또 무기류로는 물고기 비늘처럼 생긴 갑옷인 철제찰갑편, 버드나무형과 뱀버리형 철제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마구와 무기류 유물들이 왜 미륵사지에서 발견되는 것일까?
마구류의 출토는 평상시 절에서 교통수단으로 이용했을 것을 보인다. 무기류는 고려 말(14세기 중반이후) 금강을 따라 들어온 왜구의 노략질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절을 지키고 나아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승병과 관련된 유물로 추정된다.
청자 마상배는 고려 후기에 만들어 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쟁터에 나가기 전 장군이 말 위에서 왕의 하사주를 받아 그 자리에서 마시고 술잔을 땅바닥에 내리쳐 깨뜨리며 왕을 대신해 출정을 선포하는데 쓰인 잔이다. 그러나 평화로울 때는 잔치, 제사 등 의식용으로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마상배는 삼국시대 토기가 쓰였으며 고려시대 이후에는 상감청자, 조선시대부터는 분청사기, 백자 등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철제 찰갑편은 미륵사지 서원 승방지에서 46편이 출토되었다. 그 모양과 크기에 의해 장방형(길이 9.3cm, 너비 2.4cm)과 작은 장방형(길이 5cm, 너비 2.3cm) 등 2종류로 나뉜다. 찰갑의 각 편에는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어서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부 편들은 서로 붙어 있는 상태이다.
특히, 화려한 청자 마상배를 볼 때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 때 창건한 이후 고려 말기에도 매우 번창한 절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조선왕조실록’ 태종 7년에 여러 고을의 복을 빌던 미륵사를 명찰로 대신 지정하는 기록이 보이지만, 조선 정조 때의 문인 강후진의 ‘와유록’에 나오는 ‘유금마성기’ 편에 “미륵사는 100여 년 전 폐허가 됐으며, 7층으로 남아 있는 석탑의 옥개석 위에 사람이 올라가 낮잠을 즐긴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미륵사지의 폐사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