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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사찰 제석사지를 말하다.

[익산의 재발견 #16]백제시대 전형 1탑 1금당 최대 목탑지

등록일 2012년06월21일 17시12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백제시대 1탑1금당의 가람배치를 한 전형적인 백제 왕실사찰로 최대 목탑지가 익산에서 확인되었다. 이것이 바로 왕궁면 왕궁리 백제 왕궁터에서 동쪽으로 1.4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제석사지이다.

제석사지는 2007년부터 전면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결과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었다. 첫째는 현재의 제석사지는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된 정관 13년(639년) 화제로 인해 다시 건립된 사찰로 확인되었다.

두 번째는 삼국시대에 가장 먼저 인동당초문 암막새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세 번째는 제석사지는 백제 왕실사찰로서 미륵사지와 비교될 수 있는 대규모 사찰이었다는 사실이다.

미륵사지에는 탐과 금당이 동서로 나란히 세 개소가 조사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일탑일금당(一塔一金堂)의 일반적인 백제사찰 세 개가 한곳에 모여 있다고 할 수 있어서 삼국시대 가장 큰 규모의 사찰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제석사지의 규모는 미륵사지보다는 작지만 사찰터의 남북 길이가 100m가 넘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사찰 내 건물의 규모를 살펴보면 제석사지가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먼저 목탑은 지금까지는 미륵사지 목탑지가 백제에서 가장 커 기단 일변의 길이가 18.56m이었으나 제석사지 목탑지는 21.2m로 백제 최대의 미륵사지보다 훨씬 더 큰 목탑이 있었다. 금당지도 미륵사지 중금당지보다 길이가 5.8m 나 더 큰 31.8m이며, 강당지는 백제 사찰의 강당 중 가장 큰 미륵사지보다는 약간 작은 51.8m로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제석사지는 제석신앙과 관련된 왕실사찰로서 발굴조사 과정에 인동당초문암막새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정도만 알려졌다. 그런데 발굴조사 과정 확인된 건물의 규모를 검토해 보면 백제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지와 비교되거나 목탑지와 금당지는 미륵사지보다 더 큰 규모로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백제 무왕대에 공주나 부여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백제 최대 규모의 왕실사찰인 제석사와 국립사찰인 미륵사를 익산에 건립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백제 말기에 익산이 왕도로서 충분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제석사는 제석천을 주불로 모시는 도량으로 제석은 수미산 정상인 도리천에 거주하는 천주로서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인간의 선악을 주제하는 신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제석신앙을 위한 불당은 왕궁 내에 자리하거나(내 제석궁) 왕궁 밖에 위치하더라도 왕궁과 가까운 곳(외 제석궁)에 건립하게 된다.

제석사와 관련된 유일한 기록인 「관세음응험기」의 첫머리에 제석사에서 있었던 응험의 사실을 말하기 전에 제석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백제무광왕천도지모밀지(‘百濟武廣王遷都枳慕蜜地)’를 기록한 것은 제석사는 항상 수도에 건립됨으로 백제 무왕이 금마로 천도했기 때문에 당시 수도였던 익산(금마)에 자리한 제석사에서 있었던 응험을 말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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