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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 정체가 뭐야?! 왕궁이야 사찰이야

[익산의 재발견 #10]대관관사’와 ‘관궁사’명 기와 1백여 점 수습

등록일 2012년05월09일 19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왜 백제 왕궁 안에 탑이 있을까?”

익산 왕궁리유적 “왕궁일까 사찰일까”하는 오해와 궁금증을 종종 불러일으킨다.

이는 왕궁리유적에 백제 무왕대의 ‘왕궁유적’과 후대의 ‘사찰유적’이 같은 위치에 중복하여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왕궁리유적은 시기를 달리하여 왕궁이면서 사찰이라는 것이다.

왕궁리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왕궁의 중심부인 정전 성격의 대형건물을 철거하고 그 위에 탑 등 사찰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되어 왕궁과 사찰의 선후 관계를 알 수 있다.

특히, 출토된 유물 중 사찰 이름을 알 수 있는 ‘대관관사(大官官寺)’, ‘관궁사(官宮寺)’, ‘왕궁사(王宮寺)’명 기와 3종은 왕궁에서 사찰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중 틀로 찍은 ‘대관관사’와 ‘관궁사’명 기와는 1백여 점이 수습되었으나 기와 제작과정에서 날카로운 도구로 직접 글씨를 써 넣은 ‘왕궁사’명 기와는 1점 밖에 출토되지 않았다.

이는 ‘왕궁사’는 사찰유적의 정식 명칭이 아닐 가능성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장인이 기와를 만드는 중에 “전에 왕궁이 있었던 곳이 사찰이 되었다”는 생각이 나서 즉석에서 ‘왕궁사(王宮寺)’라고 쓰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왕궁사’명 기와는 2004년 왕궁리5층석탑 동편 사찰 관련 건물지를 조사하는 과정에 수습되어 ‘백제 왕궁’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해 주었다.

당시 왕궁 관련 중요 유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왕궁터’라는 단서를 제공해 준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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