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前 대통령이 서거 6일 만인 23일 국회에서 국장으로 영결식을 치르고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 영면에 들었다.
23일 오후 2시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故 김대중 前 대통령 영결식은 이희호 여사 등 유족과 이명박 대통령 내외 및 전직 대통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 11개 해외 조문사절단 및 각계 대표와 시민 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의 사회로 거행된 영결식은 국민의례, 묵념, 고인 약력보고, 조사 및 추도사 낭독, 종교의식, 생전영상 상영, 헌화와 분향, 추모공연, 조총 발사 순으로 진행됐다.
제일 먼저 약력보고에 나선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집행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과 파란만장한 인동초 같은 삶을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갔다.
이어 조사에 나선 한승수 국무총리(장의위원장)는 "고인은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오셨다"며 "이러한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추념했다.
한 총리는 특히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해온 해묵은 앙금을 모두 털어내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참뜻일 것"이라며 "이제야말로 지역과 계층, 이념과 세대의 차이를 떠나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라는 당부를 끝으로 고인의 영전에 조사를 받쳤다.
이어, 추도사에 나선 박영숙 미래포럼이사장은 "우리 민족의 숙원과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와 통합의 바람이 지금 들불처럼 번지게 하는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라며 "자신을 그토록 핍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들을 모두 용서하셔서 '용서와 화해'라는 귀한 유산을 남기셨다"고 밝혔다.
추도사에 이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거행된 뒤,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이 방영됐으며, 유족과 각계 대표 등의 헌화, 추모공연, 3군 조총발사에 이어 고인을 모신 운구차가 출발하면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영결식에 앞서 진행된 발인은 오후 1시30분부터 30분간 진행됐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국회를 출발해 동교동 사저와 서울광장, 서울역 광장을 거쳐 동작동 서울현충원으로 향했다.
현충원 안장...'편안히 잠드소서'
국회에서 영결식이 엄수된 뒤 국회를 떠나 동교동 사저와 서울광장, 서울역 광장 등을 거친 운구행렬은 예정보다 10분 정도 빨리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의장대의 봉송으로 관이 안장식장으로 옮겨진 뒤 곧바로 고인이 신자였던 천주교를 시작으로 불교와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이어서 유족과 지관이 방위와 풍수지리 등을 고려해 결정한 지점의 1m 80cm 땅 아래로 하관됐다
안장식에 참석한 유족들과 동교동계 및 국민의 정부 시절 인사, 민주당 관계자들은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국화를 헌화하며, 오열과 통곡의 하관식을 지켜봤다.
하관식에 이어 고인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가져온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의식이 이어졌다.
그리고 묵념과 의장대의 조총 발사를 끝으로 엿새 동안 진행된 국장 절차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제15 대 대통령 김대중의 묘' 라는 비석 아래 고인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김 전 대통령의 묘역은 관악산 공작봉 기슭의 해발 45m 지점인 국가유공자 제1 묘역 하단부에 자리잡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와는 100여m,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와는 35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크기는 묘역을 검소하게 꾸며 달라는 고인의 생전 당부에 따라 260여㎡ 규모로 조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