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면세유 관리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
농협에 따르면, 면세유 공급제도는 농어촌 지역의 영농비용 절감 차원에서 기계가동에 필요한 유류에 대해 특별 소비세 등 세금 감면 혜택을 주기 위해 1986년 도입됐다.
이에, 농협은 농민들에게 일반 시중가의 약 40% 수준에서 면세유를 지난 한해에만 약 197만5000KL, 액수로는 약 1조8000억어치를 공급했다.
수조원대의 엄청난 양이 공급되는 것만큼 이를 둘러싼 크고 작은 비리가 매년 끊이질 않고 있다.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도 문서를 짓는 것처럼 허위로 꾸며 면세유를 타내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이를 싼 값에 사들여 제 멋대로 일반에게 부정 유통하는 주유소도 적지 않다.
농민들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야 할 면세유가 실질적 수혜자가 아닌 일부 농민들과 유류 판매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수법의 비리가 꼬리를 물며 고질화되고 있는데도 관리·감독기관인 농협은 매번 속수무책이다.
지난 13일 검찰 수사로 무더기로 적발된 익산지역의 농협 면세유 비리사건은 면세유 관리의 허술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전주지검 군산지청에 따르면, 양계업자와 농민 등 14명은 농작물 생산실적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농업용 면세유 수십억원어치를 빼돌렸다가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검찰은 이 가운데 양계업자 A씨(49.익산시 황등면)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농민 B씨 등 1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이들 농민들로부터 면세유를 싼 가격에 사 불법 유통시킨 주유소 업자 C씨(38)는 장물취득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 수사 결과, 양계업을 하는 A씨는 지난 2005년부터 2008년말까지 농기계 대수를 부풀리거나 양계 생산실적보고서 등을 허위로 꾸며 관할 농협으로부터 8억6700만원 상당의 면세유 73만5000ℓ를 받아 약 4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다.
또 주유소 업자 C씨는 이들 농민들로부터 4년에 걸쳐 2억5200만원 상당의 20만6800ℓ의 면세유를 헐 값에 사들여 1억2000여만원 상당의 부당한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다.
검찰조사에서 이들 농민 B씨 등 12명이 농협을 통해 같은 수법으로 공급받은 면세유의 양은 277만3527ℓ(36억3500만원)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3~4년 동안이나 이 같은 불법을 지속한 것으로 볼 때 농협의 면세유 관리감독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이에 대한 농민들의 도덕불감증이 만연돼 있다는 것.
대다수 농민들은 농사가 천직으로 알고 자신의 피와 땀으로 농사를 짓지만, 일부 농민들은 이 같은 행위가 명백한 불법인지 알면서도 경제난을 탓하며 이를 서슴지 않고 있다.
현재 농촌에서 사용하는 관리기 5마력 짜리의 경우 1년간 200ℓ가량의 면세 휘발유를 공급 받을 수 있고, 트랙터 50마력 짜리의 경우에는 무려 2250ℓ의 경유를 공급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면세유를 노린 농민들이 거의 쓸모없는 농기계들을 싼 값에 산 뒤 등록하는 수법으로 자동차에 주유하는 등 도덕적 해이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익명을 전제한 지역의 한 농민은 "폐농기계들을 등록해 면세유를 받아 자신과 자식들 승용차에게 주유하는 것은 농촌에서는 다 묵인되는 사실"이라면서 "불법이라는 것은 알지만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의 폐기 직전의 농기계에까지 면세유 카드가 발급된 것으로 알려져 유류카드 발급에 대한 농협의 관리감독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금융 전문가는 "농협중앙회는 연 4회 이상 면세유 공급 및 사용실태를 점검해야 하나 이런 실태파악을 사실상 형식적으로 하고 있어 농민들이 이 같은 허술함을 악용하는 것이다"고 진단하며, “특히, 이 같은 사례가 매년 발생하는데도 감독기관인 농협은 오히려 농민들의 눈치를 살핀 채 그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와 해당기관이 면세유 유통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에 들어가지 않는 한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서 '값싼 기름'을 둘러싼 각종 비리는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