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때 이른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그가 서거한 봉하마을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에서까지 추모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뙤약볕 아래 몇 시간씩이나 기다린 끝에 분향소에 이르러 국화 한 송이를 영정 앞에 놓고는 사람들은 이내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목 놓아 통곡하는 조문객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자신들의 혈육도 친구도 아니며 가까이에서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바치는 국민들의 ‘눈물의 조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과잉 표적수사에 의한 전직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국민들의 항의 표시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느 논객이 말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와 세상에 대해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시위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국민들의 조문에는 “애도와 분노, 울분, 안쓰러움, 동정, 연민의 복합체이되 그 이상의 무엇이 깔려 있다.” 그들에게 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이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영(靈)과 육(肉)으로 구성된 존재이다. 일상에서는 우리의 몸뚱이가 우리의 실체를 규정하지만 실제적인 우리의 존재를 규정짓고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영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국민들은 그를 통해 현실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을 꿈꿨으나 그가 죽음으로 그 꿈이 허물어지는 아픔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현실에서 실체화된 우리들의 꿈’이었던 것이다.
국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통해 보았고 이루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권위주의 사회로부터의 탈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망국적인 지역주의 타파, 정경유착의 고리 차단, 화해 협력에 기초한 남북교류 추진 등과 같은 정치적 이상이 아니었을까?
국민들의 바람에 부응하듯 노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권위주의 행태를 무너트리기 위해 투쟁해 나갔다. 이를 위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의 임기 5년 동안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을 되돌아보면 대부분 권위주의 청산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취임 직후에 감행한 당정분리와 집권당 총재직 거부 그리고 국회의원 공천권과 당직 임명권을 당 지도부에 돌려준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해 당을 청와대의 하청기관으로 삼았던 과거 권위주의적 정치 행태와 결별하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그리고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화도 추진했다. 정권기반이 취약한데 권력기관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주의 청산이라는 이상을 관철했다.
더 나아가 청와대가 ‘내각 위의 내각’으로 군림하는 관행을 거부하고 청와대를 대통령의 참모 기관으로 바꿨다. 국무총리가 장관 임명 제청권과 내각 통활권을 행사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통해 대통령의 권력을 총리와 나눠 행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고 했던 ‘바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며 우리 곁을 떠났다. 나라의 발전을 위한 정치적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불편한 현실을 감내하다 영원한 자유를 찾아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한 것이다.
그는 유서에서 너무 슬퍼하지 말고 미안해하지 말며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남겨진 우리는 그가 평생 동안 추구했던 정치적 이상을 이루어 나가기 위한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되었다. 그를 괴롭혔고 그를 슬프게 했던 사회적 병폐를 모두가 마음을 가다듬어 고쳐 나가는 것이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