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석왕동 산 55, 56번지에 위치해 있는 익산쌍릉에 무단으로 설치되어 있던 석물 2기가 청주한씨 종중에 의해 7월 말경 자진 철거됐다.
이번에 철거된 석물은 지난 2007년 4월 24일 대왕릉과 소왕릉 앞에 각기 설치되었던 상석들이다. 문화재현상변경허가 등을 이행하지 않고 설치하여 3차례의 원상복구 촉구에도 철거되지 않아 문화재보호법위반으로 사법당국에 고발조치 된 바 있다.
시 관계자는 “마한과 백제의 고도 익산을 찾는 관광객과 시민에게 익산쌍릉에 대해 오해를 줄 여지가 많았는데 늦은 감은 있지만 청주한씨 중종 석물 자진철거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한편, 익산쌍릉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고려사』『신증동국여지승람』등의 기록에 의해 “백제 무왕의 능이다, 후조선 무강왕의 능이다”“라는 설로 양분되는데 1917년 일본인 곡정제일(谷正濟一)에 의해 발굴조사 된 내용이 대정6년도조선고적조사보고서(大正六年度朝鮮古蹟調査報告書)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매원말치(梅原末治), 유광교일(有光敎一) 등에 의해 연구된 바 있으며 이를 통해 쌍릉이 백제사비기의 횡혈식고분임이 밝혀졌다.
학계에서는 봉토 또한 부여 능산리고분군에 비해 대형으로 왕릉급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근대에 이루어진 발굴조사 자료가 부족하고 확실한 명문자료가 출토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 실체를 논하기는 어려우나 고분의 형식이나 금마와 왕궁일원에 산재한 백제관련 유적과 더불어 백제 무왕과 그 왕비의 능일 개연성이 가장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