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을 준 사람에게는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을 선고 받은 반면에 뇌물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사람에게는 무죄 판결이 내려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재판부가 이 뇌물을 받은 대상자로 ‘제 3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을 제기, 또다른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특히, 익산시 승진 인사 비리사건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이 이처럼 사건 실체와 검찰 수사의 모순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향후 전개될 검찰의 수사 방향과 항소심 공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정재규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익산시 승진 인사 비리와 관련해 뇌물 수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익산시장 L 전 비서실장의 선고 공판에서 증거주의 원칙과 P 전 국장이 한 법정진술의 신빙성이 낮은 점 등을 들어 L 전 실장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부합되는 증거로 피고인에게 뇌물을 전달했다고 한 P모(55) 전 익산시 국장의 진술이 있으나, 여러 정황 상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이 같이 판결했다.
재판부가 검찰이 공소 사실에 대한 거의 유일한 증거로 제시한 “뇌물을 L 전 실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힌 P 전 국장의 진술을 “시간이 가면서 구체화되고, 그 지급 동기 등이 지극히 이례적이어서 믿기 어렵다”고 그 증거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할 수 있는 증거에 의해야 한다”며 증거주의 원칙을 들었다.
하지만 L 전 실장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한 P 전 국장은 이미 같은 법원에서 진행된 1심에서 징역 8월의 실형을 받은데 이어, 이달 초 열렸던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이는 이들의 죄명이 서로 다르고 서로 다른 재판부라고는 하지만 같은 1심 법원에서 나온 같은 사건의 재판 결과가 뇌물 공여자에게는 유죄가, 유죄가 확정된 자가 지목한 수수자에게는 무죄가 선고되는 다소 ‘이례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더욱이, 재판부는 ‘뇌물을 준 사람만 있고 받은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돈이 흘러 들어간 최종 목적지로 제 3의 인물을 지목, 또 다른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원의 증거 서류 및 진술 등 여러 정황 등에 비춰 볼 때 P 전 국장은 고향 후배이자 계모임을 함께 하는 익산시의회 의원 A씨에게 4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추측된다”며 “이 때문에 P 전 국장은 피고인(L 전 실장)에게 줄 돈마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언급은 뇌물을 받은 사람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어 향후 전개될 검찰의 행보와 수사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재판부의 이러한 결정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며 L 전 실장에 대해 즉각 항소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이 같이 뇌물을 수수한 대상자를 제 3의 인물로 판단하고 있는 것과 달리 검찰은 L 전 실장에 대해 즉각 항소해 죄를 묻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향후 항소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같은 의외의 결과로 인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익산시의회 의원인 A씨다.
기소되지도 않은 자신의 혐의를 검찰이 아닌 재판부가 공식 제기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개월동안 진행된 검찰 수사에서 그 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던 각종 혐의를 모두 벗고 명예를 회복해 향후 정치 행보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번 재판부의 문제 제기로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돼, 이로 인한 상당한 후유증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재판부로부터 인사 비리 사건의 제 3의 인물로 지목돼 정치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A씨가 이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향후 정치 행보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