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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교회 산증인 채은실 목사

교회 어려울수록 선교 팔 걷어

등록일 2007년03월02일 00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 다른 교회도 도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기장 익산마동교회 채은실 목사는 " 지난 1984년 마동교회에 부임하고 난뒤 당시 교인들이 가난하고 어려워서 심방 갈 집이 없을 정도였다" 면서 " 그때부터 주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는 작정기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채 목사는 성도들의 헌금과 십일조 외에 모든 기금을 선교헌금으로 명칭을 바꾸고 구체적인 선교를 사업에 팔을 걷어 부쳤다.
초기에는 20여명 성도들의 힘으로 교회에서 매달 2만원과 한 성도의 8만원 헌금을 보태어 매달 10만원을 선교비로 지출했다.
이로써 전서노회 소속 군산성광교회 다음으로 2번째 개척교회가 선교활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채 목사는 “매달 2만원씩 어려운 5곳의 교회를 돕게 됐고 교회가 부흥 되면서 자연스럽게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며 당시를 회고 했다.
그는 또 " 하나님 뜻대로 하므로 교회가 성장하고 많은 복을 받게 됐다" 면서 " 현재는 500여명의 성도들이 늘었으며 개척교회, 해외선교,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매달 구제비를 전달하고 있고 선교를 통해 교인들의 진실한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 고 말했다.
어릴 적 군산 서수에서 자란 채 목사는 " 고등학교 재학 시절 목사님 딸이 동창으로 있었는데 예수병원 간호학과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환경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서 정신이 이상해지는 모습을 보게 됐다" 면서 " 당시 충격이 컷던터라 성인이 되어 돈을 많이 버는 장로가 되어 어려운 교회의 목사님을 돕고 싶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군산 개문교회 장로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목사가 되길 원한다'라는 기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이 기도가 통한 탓인지 채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게 됐고, 장로가 아닌 아버지가 꿈에 그리던 목사가 됐다. 초기에는 세상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목회를 '해야 하는지 그만두어야 하는지' 고통 속을 헤매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고 이겨냈다.
채 목사는 " 장로님이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받아 주는 삶을 강조하게 됐다" 면서 " 기회가 된다면 '절대자 앞에서’라는 자서전을 펼치고 싶다" 는 뜻을 밝혔다.
그는 "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내면서 남에게 베풀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 고 말했다.

한편 채 목사는 1960년 3월 남성고등학교, 1976년 9월 24일 한국신학대학을 마치고 1984년 3월 12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대학원을 졸업했다.
1969년 4월 28일 전북노회 마룡교회에 부임, 1976년 10월 21일 내곳교회(현 계문교회), 1978년 8월 21일 전북서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됐다.
채 목사는 1980년 4월 15일 대선교회와 84년 4월 20일 마동교회에 부임하게 됐다.
1982년 3월에는 익산시찰장을 지냈으며 1994년 3월 전북서노회 노회장 역임, 1998년 3월 전북서노회 교사대학장, 1998년 9월 익산노회 선교사업위원회 위원장, 2001년 3월 익산노회 해외선교위원장, 익산 시찰장을 지냈다.
2000년도에는 총회 영성개발 위원회를 지냈으며 2005년 익산시 기독교연합회장을 맡은바 있다.


전북중앙신문/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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