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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1,400년 백제의 문 열린다!

익산 미륵사지로, 궁성로에서 만나는 백제 이야기

등록일 2013년09월04일 18시14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지난 달 익산시와 공주·부여를 묶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내년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대상에 최종 선정됐다.

 백제 마지막 수도였던 익산은 궁성로, 무왕로, 미륵사지로, 선화로 등 길 이름에서부터 백제향이 물씬 묻어난다.

새 도로명 주소 따라 아련한 옛 흔적을 더듬어봤다.

# 미륵사지로 (금마 서고도리-함열 와리)

‘미륵사지로’는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를 시점으로 백제시대 최대 사찰인 미륵사지를 관통해 함열읍 와리까지 이어지는 13km로 익산토성과 금마도토성, 사자암, 미륵사지, 석불사, 태봉사 등을 차례로 만날 볼 수 있는 길이다.

▲ 왕과 왕비의 소원이 깃든 미륵사지

금마에서 미륵사지로 향하는 길은 하늘을 덮을 듯 울창한 메타세콰이어가 백제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미륵사지로’ 가운데 자리한 미륵사지는 무왕과 무왕비인 선화공주가 미륵사에 사는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도중 만난 미륵삼존불이 출현한 자리다. 기록에 의하면 왕은 왕비의 청을 받아 지명법사의 신통력으로 연못지를 메꾸고 미륵사를 지었다고 한다.

미륵사지는 3탑 3금당의 가람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데 가운데 웅장한 목탑이,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돌로 만든 9층 석탑이 있었다. 목탑은 사라졌지만 동탑은 복원을 해 새롭게 태어났고 미륵사지 석탑으로 불리는 서탑은 현재 복원 중이다. 터 옆에 자리한 유물전시관(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에는 무왕의 꿈이 담겨있는 19,000여점의 유물 중 400여점이 전시돼 있다.

▲ 326cm 거신 광배와 화불, 연동리석불좌상 

미륵사지를 벗어나 석불 사거리에 이르면 왼편 도로 가장자리에 석불사로 불리는 백제시대 절이 있다. 절집 대웅전에 안치돼 있는 연동리석불좌상은 보물 제45호로 머리만 본래의 것이 아닐 뿐 불신, 대좌, 광배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백제시대 작품이다.

머리 부문을 제외한 몸체의 높이는 156cm이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 높이는 326cm로 우리나라 불상의 광배 중 가장 크다. 불상은 당당한 어깨, 균형 잡힌 몸매, 넓은 하체 등 서툰 듯 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옷자락 주름이나 광배 무늬 등이 상당히 정교해 당시 백제 장인의 기술을 짐작케 한다. 특히,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구슬 같은 물방울이 맺혀 흘러내리는 현상을 보여 일명 ‘땀흘리는 석불’로 불리고 있다.

연동리석불좌상

▲ 삼존석불을 모신 태봉사

석불사에서 맞은편 진북로를 따라 태봉산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하다. 작은 야산인 태봉산에는 재미난 일화들이 전한다. 먼저 고조선 준왕이 득남을 위해 기도를 하다 세 아들을 얻고 아들들의 태(胎)를 묻은 후 산의 이름을 ‘태봉’이라고 불렀다고 설이 있다.

또, 무왕이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이곳에서 기도를 하다 삼존불상을 만나 절을 짓게 하고 태봉사라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도 내려온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는 것이니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득남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극락전에 봉안된 삼존석불에 영험함이 있다하여 이곳을 찾고 있다.

# 궁성로 (금마 동고도리-왕궁 온수리)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왕궁(王宮)이란 지명을 갖고 있는 지역은 익산뿐이다. ‘궁성로’는 금마면 동고도리와 왕궁면 온수리를 잇는 약 8km의 도로로 ‘왕궁 성터’를 가리킨다.

▲ 백제 왕실의 수호사찰, 제석사지

왕궁 궁평마을 입구에 제석사지 제석사(帝釋寺)터가 있다. 백제 무왕은 왕궁평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성을 쌓을 무렵 제석사를 세웠다고 한다. 제석천의 힘으로 왕궁의 안녕과 번영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담긴 제석사는 화재로 사라져버리고 절터도 밭이나 논으로 변해버렸지만 건축물을 지탱해주는 심초석만은 그대로 남아 이곳에 목탑지가 존재했고 백제 왕조의 수호사찰격인 제석사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국내 유일의 백제왕궁터, 왕궁리유적

▲ 마한, 백제를 품고 흘렀던 옥룡천

제석사지에서 ‘궁성로’를 따라 삼례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편 논 한가운데 세워진 고려시대 석불 두 기를 만날 수 있다. 바로 보물 제46호 고도리석불입상이다. 두 석상은 약 200m 가량 떨어져 있는데 이 사이로 옥룡천이 흐르고 있다. 마한, 백제의 옛 수부를 흘렀던 옥룡천은 용화산에서 발원, 면소재지와 왕궁, 춘포면을 지나 만경강으로 흘러드는데 예전에는 이 일대가 모두 갈대밭이었다고 한다.

▲ 국내 유일의 백제왕궁터, 왕궁리유적

고도리석불의 등 뒤로 4차로 국도가 높이 놓여 있고 그 아래 굴다리를 지나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배롱나무 꽃 사이로 우뚝 선 국보 제289호 왕궁리5층석탑이 보인다.

왕궁리5층석탑은 매우 넓은 터 위에 홀로 서 있다. 이 터는 일명 ‘왕궁평성’이라고 불리는 왕궁리유적지로 왕의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건물지를 비롯한 14개 건물지와 백제 최고(最古) 정원유적, 금, 유리, 동 등을 생산하던 공방지, 역시 우리나라 최고 위생시설인 대형화장실 유적 등이 발굴돼 왕궁의 축조과정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유적지 옆 왕궁리유적전시관(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에는 익산이 왕도였음을 입증하는 전달린토기, 유리제품, 금제품, 대형항아리, 수부명 기와 등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3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소통뉴스 이백순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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