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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문가 숨은 이야기, 익산서 만나다

‘연안이씨 종중문적 유물전시관’ 13일 개관

등록일 2013년04월14일 18시06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조선시대 대제학을 가장 많이 배출했으며 문과 합격자만 200명이 넘었던 연안(延安) 이씨 가문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연안이씨 종중문적 유물전시관이 익산에서 문을 열었다.

익산시는 13일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 ‘연안이씨 종중문적 유물전시관’(관장 이천인)의 개관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연안이씨 종중문적 유물전시관에는 조선 전기 문신 충간공(忠簡公) 이숭원(李崇元)의 조부에서 손자까지 내린 교지 18매를 비롯해 자체 소장유물 200여점과 전국의 연안이씨 문중에서 기증한 300여점의 유물 등 총 500여점에 이르는 유물들이 전시된다.

전시관은 지하 1층, 지상 1층 635㎡로 전시실과 시청각실, 수장고와 학예실을 갖추고 있으며, 연안이씨의 뿌리와 유래, 후손의 모습을 다양한 자료와 영상을 통해 소개한다.

시는 이번 전시관 개관을 통해 보물 제651호로 지정된 교지와 관련 유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안이씨 충간공(忠簡公) 종중에서 소유한 보물과 유물을 공개해 시민들이 쉽게 지역의 위대한 유산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보물 제651호 연안이씨 종중 문적은?

연안이씨 종중 문적은 조선 성종때에 충간공(忠簡公) 이숭원(李崇元, 1428∼1491)에게 내려진 좌리공신록권과 공신회맹록 6책, 그리고 세종 2년(1420)에서 명종 원년(1546)에 이르는 교지 18매로 이들 유물은 1979년 보물 제651호로 지정되었다.

이들 연안이씨 종중 문적은 본래 현동마을 아래 현동사 어서각에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1999년 보물 제651-2호인 이숭원좌리공신교서와 보물 제651-3호인 공신회맹문이 도난당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후 교지 18매로 구성된 보물 제651-1호를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 보관해 오다 이번 삼기면 기산리에 위치한 현동사 연안이씨 종중문적 유물전시관 개관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게 되었다.

교지에 담긴 국왕의 권위를 보다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자격. 시호. 토지. 노비 등을 내려주는 문서를 교지(敎旨)라고 한다. 교지는 조선개국 초기에는 왕지(王旨)라 하였으며,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勅命)이라 불렸다. 또, 쓰임에 따라 관료에게 내리는 관작, 관직을 내리는 고신, 문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홍패,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백패, 죽은 사람에게 관직을 높여주는 추중교지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연안이씨 종중문적의 교지는 충간공 이숭원(李崇元)을 비롯해 그의 아버지 보정(補丁), 손자 계륜(繼倫) 등이 1420년(세종 2)부터 1546년(명종 1)사이에 받은 것이다. 여기에는 조선 세종 2년(1420)에 이숭원의 아버지 이보정에게 내린 문과급제 교지 1건, 이숭원에게 내린 교서 10건, 그리고 이숭원의 할아버지인 이백겸에게 내린 증직교서 1건, 그의 손자 이계륜에 관한 것이 6건이 있다.

특히, 충간공 이숭원의 부친인 이보정이 1420년(세종 2년) 관직을 받으며 임금에게 받은 홍패교지는 ‘왕지’로 시작하는데 반해, 이숭원이 1450년(문종 즉위년) 생원․진사시에 합격해 받은 백패교지는 문서의 시작이 ‘교지’로 시작된다는 점이 이채롭다.

조선 초기 ‘교지’를 ‘왕지’로 부른 것은 고려의 영향이 크다. 고려는 몽고의 침략을 받고 원나라의 간섭으로 제도가 격하되었는데 조선이 창업된 뒤로는 차차 고려의 여러 격식이나 용어를 다듬게 되었다. 왕지 역시 세종 7년에서야 비로소 교지로 바뀌게 된다.

이들 홍패와 백패 등 연안이씨 종중문적에 남은 교지는 조선 개국 초 ‘왕지’로 쓰였던 국왕의 문서가 세종 7년인 ‘교지’로 바뀐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왕권의 상징인 교지를 통해 조선의 제도와 문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식으로 발전해 가는지를 엿볼 수 있다.

백패교지 조선시대 현전 최고(最古) 과거 합격문서가 있다?

“교지(敎旨)

유학이숭원생원 삼등제십팔인 (幼學李崇元生員 三等第十八人格者)

경태원년구월초오일 (景泰元年九月初五日)”

이는 1450년 9월 5일에 이숭원이 생원 3등 제18인으로 입격하고 받은 백패교지이다.

조선 초기 생원, 진사과 등 과거에 합격하면 이처럼 ‘백패’라는 합격증서가 주어졌다. 백패는 백지 반폭에 성명과 성적의 등급 및 등수와 발급연월일과 왕의 보인이 찍혀있었는데 이 백패를 받으면 성균관에 진학하거나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백패 교지가 바로 연안이씨 충간공 이숭원(李崇元)의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고문서정선2’)

충간공 이숭원은 단종 원년(1452)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형조판서,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며, 성종 2년(1471)에 명량좌리공신으로 연원군에 봉해졌다. 1485년에는 우참찬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89년 다시 형조판서를 지낸 뒤 1491년 병조판서로 있다가 향년 64세로 졸하였다. 그는 경학에 통달하고 지덕을 겸비하였으며, 관직에 있으면서는 청렴과 선정을 베풀었고 모두가 우러르는 청백리로 추록되기도 했다.

추중교지

명문가의 숨은 이야기를 만나다

연안이씨종중문적유물전시관의 유물 중 교지류를 제외한 중요한 다른 유물로는 충간공 ‘이숭원의 초상화’와 영조대왕 때 내려진 명정과 현판이 있다. 조선 전기의 초상화가 흔치 않은 상황에서 충간공 이숭원의 초상화 진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연안이씨종중문적유물전시관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영조대왕사제문현판’은 거창 포충사에 제향된 화촌 이술원을 기리기 위해 영조대왕께서 직접 제문을 지어 내린 현판이다. 영조 4년인 1728년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해 안의현(경남 함양군 안의면 일대)에서 정희량이 거병을 하였고 이에 이술원이 대적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게 된다. 이 의롭고 충성스러운 죽음이 조정에 알려지자 영조대왕은 이술원에게 가선대부와 사헌부 대사헌을 증직했다고 한다. 영조대왕사제문현판은 지난 달 거창의 연안이씨 종손인 이규손 씨가 기증을 하였다.

좌리공신교서

‘이보정려각 명정’(모사품, 진품 기증 예정)은 익산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키고 이치전투에서 무명의 400여 익산의병들과 장렬하게 순국한 이보 의병장을 기리기 위해 영조대왕이 1741년 내려준 것으로 이보는 후에 사헌부 지평으로 증직되었다. 진품은 익산 은기리의 연안이씨 문중에서 기증할 예정이다.

익산시 관계자는 “연안이씨 종중문적 유물전시관이 관람객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탁본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눈으로만 보는 유물전시관이 아닌 오감을 통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시관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며 “인근 미륵사지, 왕궁리유적 등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와 연계하여 지역의 랜드마크적인 전수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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