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석왕동 야산에 두 개의 큰 무덤 즉 익산쌍릉(사적 제87호)이 있다. 쌍릉이라고 해서 2개의 능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약 200m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그 중 크고 북쪽에 있는 무덤은 ‘말통대왕릉’ 또는 ‘대왕릉’으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남쪽에 있는 규모가 약간 작은 능은 ‘소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의 ‘말통’은 서동의 이름인 마동이 잘못 전하여 진 것이라고 한다. 이 무덤은 고려 충숙왕 13년 왜구의 노략질로 인하여 여러 차례 도굴되었다고 전하는데 1917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쌍릉의 구조는 부여 능산리(陵山里)에 있는 백제 왕릉과 동일한 형식에 속하는 판석제 굴식 돌방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왕릉 안에서 나무관 일부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으며 현재는 전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복원된 나무관은 바닥 면보다 위쪽 면이 약간 넓고 뚜껑의 윗면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관의 고리에는 8쪽의 꽃잎을 가진 연꽃무늬가 있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초상화.
2009년 1월 초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이 발견되고 특히 사리봉안기에 “사택적덕의 따님인 왕후의 발원에 의해 석탑이 건립되었다”라는 구절로 인해 ‘서동요는 허구인가? 무왕비는 누구인가?’라는 논쟁도 뜨거웠다.
하지만 왕의 비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 등으로 선화공주가 무왕비라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있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산쌍릉에 가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익산쌍릉은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주변에 솔숲이 울창하기 때문이다.
남쪽에 있는 왕비릉이 있는 곳은 더 없이 따스한 곳이다. 반면 무왕릉은 북쪽이라 바람이 몹시 차다. 무왕은 죽어서도 200m 죽어서도 찬바람 맞으며 선화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