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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발견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 _ 무왕비는 누구?

[익산의 재발견 #27 ]

등록일 2012년09월03일 20시33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2009년 1월 초 온 국민의 관심이 익산으로 집중됐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의 대발견. 이는 관련 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문화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백제 무령왕릉 발굴 이후 최대 성과’, ‘국보 중의 국보 발견’ 등 관심을 보였다. 반면, ‘서동요는 허구인가? 무왕비는 누구인가?’라는 논쟁도 뜨거웠다.

2009년 1월 14일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 과정 중에 1층 심주석의 사리공에서 사리장엄과 봉안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은제관식, 원형합, 유리 및 구슬류, 직물류 등 총19종 683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1월 19일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1400여년이란 시간을 지났나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리장엄의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그 세공기법은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리호는 작은 병 형태로 금동제사리외호(높이 13㎝, 어깨 폭 7.7㎝), 금제사리내호( 높이 5.9㎝, 어깨 폭 2.6㎝), 유리제사리병 등의 삼중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사리호 표면에 연꽃잎, 인동당초, 연화당초문이 음각되어 있으며 여백에 어자문(魚子紋)으로 장식하였다.

금제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이며 금판(金板)의 앞과 뒷면에 한 줄에 9자씩 총 194자를 음각(陰刻)하였다. 특히 앞면에는 붉게 주칠하여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 내용은 백제 왕후가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에 탑을 조성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발원문으로 미륵사 창건배경, 발원자, 석탑 건립연대 등을 알 수 있다.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석탑이 639년 백제 무왕대 건립되었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미륵사 창건에 관한 삼국유사 기록의 정확성이 입증되었다.

봉안기에 “사택적덕의 따님인 왕후의 발원에 의해 석탑이 건립되었다”라는 구절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서동요와 관련해서 이 사찰이 세계적으로 유일한 삼원식 가람이기 때문에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의 내용은 서원에 국한해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선화공주가 무왕비라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이다.

통일신라 혹은 고려시대로 인식되어 왔던 왕궁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의 제작기법과 동일하여 이 사리장엄의 조성시기 역시 백제시대로 소급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의 발견은 백제사에 있어 익산이 그 중심에 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특히, ‘익산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큰 힘이 실리게 되었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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