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랑이족이 산 좋고 물 좋고 고기 좋은 곳으로 야유회를 갔다. 도둑이 마련해 준 자리였다. 고기도 꿀꺽 꿀꺽 금단의 물도 벌컥벌컥 호랑이들이 호기가 오를 때 즈음 상좌에 앉아 있던 도둑이 입을 열었다.
“마음껏 드십시오. 여러분들 덕분에 내가 무사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얼마든지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거 인심한번 좋네. 근디 이걸 당신 돈으로 사주는 거요? 생색은....”
호랑이족에서 서열이 아래에서 두번째인 거시기의 갑작스런 대거리에 당황한 도둑이 애써 웃음 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주량이 크신가 봅니다. 전연 취기가 없으신걸 보니.. 한잔 쭉 들이키시지요. 내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도둑이 술병을 들고 다가가자 거시기가 팔을 들어 병을 가로막는 바람에 하마터면 술을 엎지를뻔하여 좌중이 순간 술렁거렸다.
그러나 거시기의 객기는 그치지 않았다.
“뜨벌. 눈앞에서는 간이라도 빼줄듯이 하지. 구덩이에 빠진 놈 막대기로 밀어 넣지나 말아야지. 그래놓고 내가 안 그랬어 막대기가 그랬어 할 작자가 동지는 무슨.. 쳐 먹을 건 지가 다 쳐먹고.. 쓰읍”
거시기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일전에 신작로 공사업자가 뇌물로 퍼주던 고기 공급을 중단하자 몇 몇 호랑이들이 갈구다가 업자의 호소로 가시울타리에 격리 수용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거시기가 도둑에게 업자의 꼬투리를 잡아 절단 내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업자와 더 가깝게 지내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었다.
보다 못한 호랑이 건탈이 벌떡 일어서더니 거시기에게 돌진해 가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시키! 이 새카만 놈이 선배들 망신을 다....”
순간, 건탈은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나동그라졌다. 거시기의 후배인 막내 호랑이가 앞발로 건탈의 뺨을 후려갈긴 것이었다. 이내 좌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던 야유회장은 건탈을 위시한 도둑의 측근파와 반도둑파 그리고 중간파 등 세 개의 파로 재빠르게 나뉘어 진영이 구축 되었고, 도둑의 측근파 호랑이 가운데 모질이가 앞으로 쑥 나섰다.
“젓비린내나는 시키가 어디서 행패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넌 뭘 잘했다고 시키.. 당초에 니들이 업자를 갈궈서 문제지. 그 업자가 가만히 있는 니들을 건드렸어? 근신을 해도 부족할 판에 이게 무슨 개쪽이여? 두목이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넌 뭐여! 뜨벌 함 붙자는거여?”
발끈한 거시기가 표효하며 모질이에게 다가가려하자 중간파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도둑은 어수선한 틈을 타고 그 자리를 떴고, 한동안 막말과 육두문자가 난무하던 가운데 누구랄 것 없이 뿔뿔이 흩어져 야유회는 우울한 뒷그림자를 드리운 채 끝장이 나고 말았다.
#2 호랑이 소굴
다음날 아침 도저히 분을 삭이지 못한 모질이가 먼 곳에서 거시기에게 고함을 지르며 호통을 쳤다.
“이 자식 너 선배 알기를..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따귀가.. 아무리 위계질서가 무너졌기로 손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거시기는 한마디도 지지않고 대거리를 했다.
“그래서 이시키야. 도둑 뒤나 핧는 주제에 얼어 죽을 선배는 무슨.. 할 말 있으면 호랑이답게 와서 해 임마. 개소리 말고”
“뭣이 어째? 너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 내가 당장 갈 것 잉게”
잠시후, 기세 등등한 모질이가 호랑이 소굴에 들이닥치며 고함을 질렀다.
“너 이 자식 도대체 뭘 믿고 까부는거야!”
그러나 이날 모지리에게는 천추의 한을 남기는 수모의 날이 되었다. 그는 손을 한번 내밀기도 전에 거시의의 전광석화 같은 앞발질에 온 몸을 난타당하고 바닥에 나동그라져 처참하게 제압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날은 호랑이 소굴이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무풍지대로 떨어진 날이었다. 소굴에 있던 여러 호랑이들이 어떤 패를 막론하고 속수무책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몇일 뒤 호랑이 족들은 긴급회의를 붙여 거시기에 대한 영구 제명을 논의했지만, 모질이등이 먼저 건드려 불상사를 불렀다는 일부의 주장으로 그날의 사건은 더 이상 거론치 않기로 결정되어 거시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