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5월 31일 익산시를 주목하고 있다. 일곱번 낙선의 쓴잔을 마시고 8번째 익산시장에 무소속으로 도전하는 박경철 후보가 7전8기의 신화를 과연 이룰수 있을 것인가 여부 때문이다.
박경철 후보는 지난98년 김대중대통령 시절 전북 익산에서 무소속으로 시장에 출마 호남최고의 41,200(35%)득표를 기록하며 무소속 돌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의 간담을 서늘케한 박후보는 이번에는 열린당과 민주당이 나눠진 상황에서 7전8기의 출진을 선언하고 후보등록을 마쳤다.
시민운동가(익산시민연합대표)로써 한국최초로 부도임대아파트 수천세대를 되찾아주고 한국최초의 확정일자날인 의무화 규칙제정, 한국최초의 익산송원백화점을 되찾아 자치경영성공 등 그의 서민을 위해 일해 온 족적은 「한국최초」의 수식어와 함께 한국NGO역사의 큰획으로 기록되고 있다.
박후보는 명지대 재학시절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민주화 요구 시위를 주도했으며, 그 이후 28세에 선명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 중앙당공보부장으로 군사정권과 싸웠다.
32세에 한겨레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이래 13, 14, 15, 17대 총선. 제 1, 2, 3대 익산시장 선거에 계속 무소속으로만 출마해 7번이나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박경철후보는 "지금 익산은 겉으로는 선거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민주당의 익산마한사과박스 김제시장 공천헌금사건, 익산시청 공무원들의 열린당 입당여부 검찰수사로 정당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닥민심은 뜨겁게 내연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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