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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익산, 문화재 등 볼거리 가득

왕실 수호사찰 제석사지, 미륵산성, 익산토성 등

등록일 2015년07월27일 15시2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대한민국의 4대 고도 중 한 곳인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지가 지난 7월 4일 UNESCO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번 세계유산 등재로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위상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익산이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들의 큰 가치를 동시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세계유산이 있는 금마면과 왕궁면에는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지 외에도 볼거리가 가득하고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유적지가 많은 곳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 왕실 수호사찰 제석사지

왕궁리 유적지에서 동쪽으로 1.4km 떨어진 궁평마을, 이곳에도 무왕의 익산천도설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유적지가 있다. 사적 제405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제석사지가 그것이다. 무왕이 왕궁평으로 도읍을 옮기기 위해 성을 쌓을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期) 내용을 보면 ‘제석사는 백제 무왕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정관13년 (무왕 40년, 639)에 벼락으로 불타버렸으나, 탑 아래 넣어두었던 불사리와 금강반야경을 넣었던 칠함이 보존되어 다시 사찰을 짓고 안치하였다.’라고 전해진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목탑터, 강당터, 회랑 등을 2007년부터 시작된 발굴조사로 확인하였으며, "帝釋寺(제석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다. 규모는 미륵사지보다는 작지만 남북의 길이가 100m가 넘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제석사지는 비록 터만 남았지만, 몇 개 남지 않은 백제절터의 하나로 그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 2000년 역사 고도의 상징 미륵산성

이천년의 역사 간직하고 있는 미륵산성, 고조선의 준왕이 세운 성이라 하여 ‘기준성’으로도 불린다. 1973년 전라북도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표고 430m의 미륵산 최고봉인 장군봉과 동쪽 계곡을 둘러쌓은 석성이다. 산 정상에서 산 능성을 따라 만들어 졌으며 그 길이가 1,822m, 높이 4~5m, 폭이 약5m로 익산 최대산성이다. 성내에서 축대를 쌓아 조성된 건물지들이 발굴조사 되었고, 대형수구지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청동모 등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 산성의 규모가 둘레 3,9000척이고 높이가 8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익산토성

백제 무왕 역사의 시작은 이곳이 아니었을까 한다. 서동(무왕)이 마를 캐던 오금산, 이산 남쪽으로는 왕궁리유적지가 있고 왕궁리유적지에서 동쪽으로는 제석사지가 있다. 오금산에 있다하여 오금산성이라고 불리는 익산토성은 1963년에 사적 제92호로 지정된다. 익산토성의 둘레는 약690m이고, 남문이 있었던 골짜기는 석축하고 나머지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 성내에는 남문지와 수구지, 건물지 등의 시설들이 남아있다. 출토 된 유물들을 볼 때 이 토성은 6세기말에서 7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보여진다.

# 섣달 그믐날 밤의 사랑 고도리 석불입상

칠월칠석이 되면 오작교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견우와 직녀, 이 둘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익산에도 전해진다.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지 사이에 있는 금마면 고도리 200m 사이에 거대한 불상 두 개가 측은하게 서 있다. 이 두 개의 불상은 각각 남자와 여자인데 두 불상 사이에 옥룡천이 흐르고 있어 평상시에는 만나지 못 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되면 옥룡천이 꽁꽁 얼어붙어, 그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새벽닭이 울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불상이 정확하게 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고, 불상 옆에 있는 ‘석불중건기’를 통해 쓰러져 있던 불상을 다시 세우게 된 이유만 짐작할 수 있다.

유독, 익산에는 수도와 관련된 유적지와 문화재들이 많다. 도성을 방어하기 위한 산성과 왕릉이 있고,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사찰이 그것이다. 아마도 금마와 왕궁일대가 왕도(수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유산(미륵사지, 왕궁리유적지)를 보러 익산에 방문하면, 이곳들도 같이 들러보길 바란다. 고대 왕국시설부터 왕도로서 자리를 지켰던 익산의 위상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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