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이 기술사양서에 제시된 요건과 무관한 실적을 제출한 ‘로이드 레지스터 아시아(Lloyd’s Register Asia, 이하 로이드)’社를 국내 원전 품질서류 재검증 기관으로 선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로이드사는 원전 기기검증 관련 실적이 전무한데다, 용역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했는데도, 기술성 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얻은 것으로 확인돼 또 다시 부실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 민주당 전정희(익산을)의원이 산업부와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로이드사는 국내 전문가 10인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의 기술성 평가에서 ‘최근 10년간 EQ와 CGID, QVD 수행실적’(15점)과 ‘수행인력 수’(20점) 모두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로이드사가 제출한 기술실적서를 검토한 결과, 지난 2005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수행한 기기검증(EQ) 실적 26건 모두 국내 업체로부터 수주한 선박 또는 해양 관련 기기의 형식승인(Type Approval)시험에 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수원이 제시한 입찰안내서(Invitation To Tender, 이하 ITT)의 기술사양서(Technical Specifications)을 보면, EQ(Equipment Qualification)는 천재지변이나 고방사선 등의 사고조건에서 원전설비의 성능과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지 검증하는 것으로, 내환경 및 내진검증을 포함한다.

특히 ITT상에는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되는 기기의 검증에 관한 국제기술기준인 ‘IEEE323’과 원자력 안정성에 관한 미국 연방정부의 법인 ‘10CFR50.49’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로이드사는 규격에 맞지 않는 비원전 기기검증 경험을 관련 실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더군다나 로이드사가 EQ실적으로 제출한 주요 형식승인시험의 기술사양에는 △육안검사 △압력시험 △절연 저항시험 △전원 변동 및 차단시험 △경사시험 △진동시험 △온․습도시험 등을 하도록 돼 있으나, 정작 EQ의 핵심인 내진검증은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환경검증의 일환으로 극한 환경에서 기기 성능을 확인하는 LOCA(Loss of Coolant Accident, 냉각재 상실사고)시험도 언급돼 있지 않다.

CGID(Commercial-grade item Dedication) 역시 기술사양에는 “원자력 품질보증 프로그램 하에 설계되고 제작된 품목과 동등함을 검증하여 보증하는 과정”으로 정의돼 있지만, 로이드사가 제출한 10건 중 최소 2건 이상은 해상 또는 선박용으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수행인력 평가 결과는 더욱 터무니없다. 한수원의 기술입찰서 평가 기준에는 용역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인력이 17명(EQ 7명, CGID 4명, QVD 6명)으로 돼 있으나, 입찰 당시 자사 인력이 15명에 불과했던 로이드사는 모든 평가위원들로부터 20점 만점을 받았다(표4 참조). 최근에서야 19명의 인력을 추가로 확보해 총 34명의 전담팀을 꾸렸으나, 이 중 15명이 국내인력인데다, 이마저도 한수원 협력사인 S사를 포함한 국내 3개 엔지니어링 업체와 인력수급계약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해외기관 선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정희 의원은 “한수원의 기술사양에 따라 평가한다면 로이드는 최소 점수조차 받을 수 없다”며 “제3의 기관이 직접 시험을 하지는 않더라도 입회를 하거나 때에 따라 재시험까지 확인해야 하는데, 어떻게 내진검증 조차 해보지 않은 업체가 국내 모든 원전에 대한 품질 서류를 재검증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적했다.

또 전정희 의원은 “원전비리를 뿌리 뽑겠다며 독립적인 검증기관으로 하여금 ‘더블체크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사업자 선정 과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면서 “원전 품질서류 재검증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