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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통달 명창, '실력도 기네스, 애향심도 기네스 감'

국악의 고장 익산의 명성 다시 찾기 위해 고향지켜

등록일 2013년06월16일 12시39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익산과 국악은 낯설다. 하지만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라는 육중한 타이틀을 가지고도 가장 대중적인 판소리 명창, 조관우의 아버지로도 더욱 친근한 조통달 명창은 바로 익산출신이다. 더욱이 TV 속에서 유쾌한 입담과 시원한 소리로 곧잘 만날 수 있고, 일년에 수십 차례 국내외공연을 다니는 조 명창이 현재 18년째 익산에 거주 중이다.

지난달 22일에 조 명창은 아들 조관우, 제자 유태평양, 힙합 현준과 세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공연을 익산에 선보이며 시민들에게 익산이 국악의 고장임을 일깨워주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왕성한 활동 중인 조 명창이 굳이 고향인 익산에서 거주하는 이유도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여 익산이 판소리의 고장임을 알리고 맥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조 명창은 “익산은 국악명창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판소리에 정정열, 권삼득, 정춘풍, 신만엽, 유공열, 거문고에 신쾌동, 시조에 김월하 등 국악의 많은 선생님들이 태어나신 곳인데 이 선생님들께서 익산에 살지 않고 타지로 떠나 익산이 판소리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고향에서 명창들이 국악의 뿌리를 내리고 퍼져나가고 또 시민들이 합심한다면 익산도 남원, 전주 못지 않은 국악의 고장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현재 조 명창은 전북대학교와 전남대학교, 우석대학교, 백제예술전문대학, 목원대학교에 출강과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본가에 조통달판소리 전수관을 운영하며 하여 유태평양 등을 비롯한 많은 젊은 후학들을 지도하며 바쁜 생활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또한 사단법인 세종전통예술진흥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통달 명창은 순천 정원박람회 6월 특별공연으로 '조통달의 판소리' 공연과 오는 22일 익산시 청광교회에서 ‘찾아가는 문화공연’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조통달 명창>

조통달은 일찍이 1952년 8살의 나이로 전국명창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쥔 타고난 명창이었다. 친이모인 박초월명창과 임방월 선생으로 다섯 살 때부터 소리를 배웠다. 13세 때(1959년) 전국명창대회서 어른들을 제치고 받은 최우수상을 받았다. 변성기 때 목을 잃어 20년 가까이 좌절, 인분까지 먹어야 했던 그는 30세의 나이 득음을 통해 명창의 반열에 오른다. 1972년 판소리보존회 전국명창대회 1등, 1982년 제8회 전주대사습놀이 장원 국무총리상 수상, 1987년 남도예술제 특장부 장원 대통령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기억에 남는 일중 하나로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앞두고 전 세계에 판소리를 알리기 위해 1988년 유럽 7개국 11개 도시를 38일간 순회하며 완창한 춘향가는 세계적으로 무한한 감동을 주었던 때를 꼽는다.

후배육성에 큰 뜻을 두고 조통달은 300년 판소리 사상 처음으로 ‘6세 소년의 세 시간 완창기록’을 세웠던 유태평양군을 발굴,소리를 전수해 이제는 한류를 대표하는 국악인으로 성장시키는 등 판소리 교육자로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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