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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이씨종중문적유물전시관 13일 '개관'

유물 500점 체계적인 관리‧전시‥정계, 학계, 종친 등 1000여명 참여 예정

등록일 2013년04월10일 13시09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연안이씨 선조들의 숨결이 담긴 종중문적유물전시관이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 현지에서 오는 13일 개관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오후 2시에 열리는 개관식에는 이한수 익산시장 등 도내 정계 인사들과 장준철 원광대학교 박물관장 등 역사문화 학계 인사, 연안이씨문중 인사 700 여명 등 총 1000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 곳 전시관에는 보물 제651호로 지정된 교지 18점을 포함한 자체 소장유물 200 점 외 전국의 연안이씨문중들이 기증한 300여 점의 유물 등 총 500 점에 이르는 유물들이 전시된다.  

또한 전시관에서는 유물전시관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연안이씨 문중의 유물을 지속적으로 발굴, 보존, 연구하는 한편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탁본 등의 체험활동 등도 제공할 예정이다.

보물 제651호는 교지 18매로 구성된 보물 제651-1호, 충간공 이숭원의 좌리공신교서인 보물 제651-2호,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부터 충간공 이숭원과 신숙주, 한명회 등 73인의 공신이 받은 훈명인 좌리공신까지 총 8 공신과 그 후손들의 수결이 남아 있는 공신회맹록인 보물 제 651-3호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보물 제651-2호와 보물 제651-3호는 1999년 9월 도난을 당해 현재는 보물 제651-1호인 교지 18매만 남아있다.

보물 제651-1호 중 연대순으로 첫 번째인 이보정(충간공 이숭원의 부친)의 홍패는 교지가 아닌 왕지로 시작하는데 반해, 현전하는 백패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숭원 생원백패는 교지로 시작되고 있다. 조선 개국 초에는 왕지(王旨)로 쓰였던 국왕의 문서가 세종 7년인 1425년에 교지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조선의 제도와 문물이 성숙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연안이씨종중문적유물전시관에서 그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

교지라는 용어는 한차례 더 변화를 하게 되는데 조선말기인 개화기가 되면 대내외적으로 군주의 위상을 높임은 물론, 자주독립국을 지향하던 움직임의 결과 황제국과 마찬가지로 교지 대신 칙명(勅命)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교지는 국왕의 신하에 대한 권위의 상징이며, 봉건적 관료정치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연안이씨종중문적유물전시관의 유물 중 교지류를 제외한 중요한 다른 유물로는 충간공 이숭원의 초상화와 영조대왕 때 내려진 명정과 현판이 있다. 조선 전기의 초상화가 흔치 않은 상황에서 충간공 이숭원의 초상화 진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연안이씨종중문적유물전시관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셈이다.

이보정려각 명정(모사품, 진품 기증 예정)은 익산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키고 이치전투에서 무명의 400여 익산의병들과 장렬하게 순국한 이보 의병장을 기리기 위해 영조대왕이 1741년 내려주었고 사헌부 지평으로 증직되었다. 익산 은기리의 연안이씨문중이 진품을 기증할 예정이다.

영조대왕사제문현판은 거창 포충사에 제향된 화촌 이술원을 기리기 위해 영조대왕께서 직접 제문을 지어 내린 현판이다. 영조 4년인 1728년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해 안의현(경남 함양군 안의면 일대)에서 정희량이 거병을 하였고 이에 이술원이 대적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게 된다. 이 의롭고 충성스러운 죽음이 조정에 알려지자 영조대왕은 이술원에게 가선대부와 사헌부 대사헌을 증직하였다. 2013년 3월 10일 거창의 연안이씨 종손인 이규손씨가 기증을 하였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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