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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3년만에 조기졸업 원광대 이혜진양

6학기 평균평점 4.5 만점 받아 18일 졸업식서 총장상 수상

등록일 2011년02월16일 21시3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원광대학교(총장 정세현)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이혜진(23 사진) 양이 평균평점 4.5만점으로 입학한지 3년 만에 교육학사학위를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졸업기준학점인 140학점을 5학점이나 초과한 145학점을 6학기 만에 이수한 이 양은 평균 성적까지 만점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양은 계절 학기를 활용해 졸업 요건에 필요한 필수 과목을 미리미리 듣고, 1학년 때부터 3년 조기졸업 계획을 세워 이번에 목표를 달성했으며, 성적 또한 1학년 첫 학기 때 4.5 만점을 받은 이후 3년 동안 만점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

가르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아 교수의 꿈을 갖고 있는 이 양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조금 일찍 영어를 접할 수 있었다”며, “자신의 장점인 창의성을 교육과 결부시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하고 싶다”는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한편, 18일에 열리는 원광대학교 2010학년도 학위수여식에서는 이혜진 양 외에도 영어교육과 최혜연, 강보미 양 등 두 명을 비롯해 법학과 김송이, 조미연 양, 체육교육과 박상민 군, 경찰행정학부 김두현 군 등 총 7명의 학생들이 1년을 앞당겨 조기졸업을 한다.

[원광대 영어교육과 3학년 이혜진 인터뷰]

1. 초.중.고등학교 때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평범한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욕심이 많아서 공부는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지만 기존에 있는 체제에 순응하는 모범생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틀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학교에서 배달 음식을 금지 시키면, 학교 뒤 무덤가 뒤로 도망가서 친구들과 자장면을 시켜먹고, 담장도 넘고, 교복 치마입고 말뚝박기를 하는 등 하고 싶은 것은 그냥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학생 간부도 여러 번 해봤고, (태권도를 오랫동안 한 덕분에) 운동 신경도 뛰어나서 체육 대회만 되면 선수로 활약하였어요.

한국에서 중학교 졸업을 못하고 뉴질랜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한국과는 많은 교육 방침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2, 영어교육과를 졸업하는데 영어를 처음 접한 때는?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조금 일찍 영어를 접할 수 있었어요.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접했었는데, 그 때 어학원 강사께서 사과(Apple) 발음이 너무 좋다고 칭찬해주셨어요. 그렇지만 그 당시 영어에 대한 흥미를 느낀 것은 아니었어요. 영어 학원 가기 싫어서 꾀병 부린 적도 있었고, 그냥 가방만 들고 다니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때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어요. 그 때 당시 굉장히 큰 규모의 어학 캠프여서 세계에 있는 많은 학생들이 몰리는 곳이었는데 국적별로 학생들을 분리시켰어요.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어를 사용해야만 했죠. 한 마디로 ‘생존 영어’를 시작한 거죠. 할 줄 아는 말은 몇 마디 안되었지만 국적도 다르고, 얼굴도 다른데 영어라는 도구로 의사소통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죠. 그 때 부터였어요. 자신감도 생기고, 외국인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졌어요. 자신감이 생기니깐 남들보다 잘 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게 되고,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3. 학과를 선택할 때, 영어교육과를 선택한 이유는?

-(OECD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4%라고 해요. 이는 미국, 일본의 대략2배되는 수치로 굉장히 높지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천편일률적이에요. 학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혹은 무엇에 소질이 있는지보다 얼마나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에 더 주안점을 두죠.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단 한가지의 잣대로 ‘등급화’시키는 격이죠. 마치 박지성으로 태어난 아이를 아인슈타인으로 키우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외국의 고등학교는 달랐어요. 1학년 때 (Yr. 11) 충분하게 적성 검사를 한 후에, 자신이 필요한 과목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듣게 하는 방법이죠. 자신의 목표가 확고한 사람은 거기에 맞추어 과목을 선택해요. 예를 들어서, 회계사가 꿈이었던 친구는 Accounting(회계학), 수학, 컴퓨터 등 자신의 목표와 가까운 과목을 들었구요, 호주에 있는 대학의 물리학과에 진학하고 싶어했던 친구는 해당 대학에서 요구하는 수학, 물리 과목을 들었어요. 아직 자신의 목표가 불분명한 학생들이라도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며 방향을 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어요. 물론, 모든 학생이 대학을 진학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친구들도 있었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한국은 새학년이 되면, 새로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미리 짜여진 시간표를 받아 적잖아요. 이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만들어버리잖아요. 외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1년 정도 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그 때는 정해진 일상을 따라가기에 바빠서 저의 적성, 흥미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한 달 간격으로 치러지는 모의고사, 논술 준비, 중간. 기말고사 내신 준비, 각종 수행 평가 등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하기 바빴죠. 수능 끝나고 바로 논술 시험 준비에 들어 갔고 단 한순간도 저를 제대로 볼 겨를이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중학교 때 적었던 장래희망을 보게 되었어요. 희망 직업에 ‘교수’라고 적혀있었고, 교수가 꿈이 었던 것을 잊고 살았던 거죠. 그래서 정시에는 망설임 없이 제가 좋아하는 과목인 영어를 전공으로 하는 교수가 되고자 원광대학교 영어교육과에(만?) 지원하게 되었어요. 한국이 세계 속에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영어는 꼭 필요해요. 저는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먼저 영어의 필요성과 잘 가르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하여 저로 하여금 글로벌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도구로써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4. 보통 사범대를 졸업하면, ‘선생님’이 되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진로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범대학(師範大學)은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대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사’를 꿈꾸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임용고시에 전력을 쏟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전공분야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도 하고 싶기 때문에 ‘교수’가 되고싶습니다.

5. 선생님(교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시기는?

-중학교 때 공부하는 것 자체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느 순간 아버지께서 ‘혜진아, 교수가 되어보는 것은 어떠니?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너와 참 잘어울릴 것 같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묘한 설렘이 생겼습니다.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글쓰고, 책쓰는 모습과 자신의 이름을 걸고 논문을 내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한 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고, 학생들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끌어올려서 가르칠 수 있다는 모습이 무척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마음 안에서 선명한 꿈이 생겨나는 시점이었습니다. 교수. 그래 교수가 되자.

6. 선생님(교수)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저는 ‘가르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가진 장점인 창의성을 ‘교육’과 결부시켜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어려서부터 계속되는 입시 전쟁에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고, 학습 동기는 바닥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이런 학습 의욕이 없고, 자신이 강의실에 왜 와 있는지 모르고 앉아있고, 이해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희망이 불타오르는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싶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휴강이 최고의 강의, 보강이 최악의 강의’라는 표현이 있는데 비싼 돈 주고 대학을 다니지만 학생들의 학습 의욕의 저하를 엿볼수 있습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과목에 흥미를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저로 인해 학생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 무척 기분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격려와 신선한 자극을 주고 싶습니다. 한국 사회의 병폐인 일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줄 세우는 식의 교육이 아닌,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고 모두에게 희망이 있는 교육 문화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큰 배움을 쌓아가는 상아탑에서 취업으로 나가는 관문으로 전락해버린 대학에서, ‘배움’을 단순히 머리의 지식을 채우는 것이 아닌 가슴을 채워 오르게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회로 나가기 전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인생의 멘토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7. 보통 3.5년에 조기 졸업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3년만의 조기졸업을 위한 학점관리 비결은?

-대학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중.고등학교 때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특정 기간만 지나면 졸업을 시켜주지만, 대학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졸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해 나가야해요. 우선, 졸업 요건에 필요한 필수 과목을 미리미리 들었어요. 과사에 자주 전화해보고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목을 언제 들어야 하는지를 알아봤고, 1학년 때 대략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목표는 3년 조기졸업이고, 이를 위해서 들어야 하는 전공, 교양과목과 계절학기에 들어야 하는 과목 등을 전략적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다보니 듣고 싶은 과목들은 초과 학점이 되어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것들은 외국인 교수님을 포함해서 여러 교수님들께 청강하기 위해 동의를 받아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A+를 맞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1학년 1학기 때 평점을 4.5를 맞은 이후로 이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1등을 해본 사람만이

1등 자리가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죠. 저는 성적을 보석이라고 생각하고 이 것에 절대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대학에서 성적 사정 방식은 대개 출석-과제-시험 이 세박자가 모두 잘 갖춰져야 점수가 잘 나오는데, 제가 가진 특유의 성실함으로 성심 성의를 다하였어요. 저 같은 경우는 대학원을 염두해두었기 때문에 학점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거든요.

우선 매 시험마다 책상 위에 포스트 잇으로 3가지 문장을 써놓고 시작했어요.

‘ 내 답안지는 모범답안이다. 무조건 완벽해야 한다. ( 서술형일 경우 ) ’

‘ 한 문제를 맞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 한문제로 틀리지 않아야 한다. ’

‘ 시험 공부는 너무 설레고 즐겁다. 아는 기쁨은 무척 신난다. ’

실제로 저는 모든 시험을 볼 때 이 시험지가 저의 얼굴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비록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있다 하더라도, 그 학생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잖아요. 저를 알리는 방법 중 가장 쉽고도 정확한 방법은 시험지를 통해서라고 생각을 해서 과제를 낼 때나 시험을 볼 때, 완벽하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 있어서 마지막까지 강의실에 남아서 답안지를 작성하고는 했어요.

덕분에 만점도 많이 있었고, 교수님들로부터 전화,문자,메일을 통해서 저의 답안지를 칭찬해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른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제 공부 방식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수 많은 것 중 하나가 되겠지만 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실성이 중요합니다. 이는 제가 예비 고3을 대상으로 교생 실습을 했을 때 느꼈던 것이지만, 정말 차별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예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별로 예쁘지 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선 성실하고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고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될 수 있으면 앞자리에 앉으세요. 그리고 성실하게 작은 과제물이라도 데드라인까지 꼭 제출하도록 하세요.

둘째. 저는 교수님 말씀을 사소한 것까지 필기했습니다. 혹자는 이 버릇이 집중력을 분산시킨다고 하였지만 저는 눈은 교수님을 바라보며 손은 빠르게 필기를 하는 것이 더 수업에 집중하게 해주었으며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리고 시험 일주일 전에는 수업 내용을 포함하여 필기내용을 A4 한장으로 요약해서 시험 전에 쭉 훑어보았습니다.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적중률도 꽤 높았습니다.

셋째. 저는 교수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시험을 출제하는 입장에서 직접 시험 문제를 출제해 보고, 사전 답안도 작성해보았습니다. 시험 전주가 되면 교수님들과 게임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떤 문제를 내셨을까, 내가 그 것을 적중시키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했습니다.

8. ‘도의실천인증제’를 받았는데 이 것을 한 이유는?

-제가 ‘도의실천인증제’를 처음 접했던 때는 새내기 시절 동기들과 함께 하였던 덕성 훈련 기본과정 때였습니다. 마지막에 교무님께서 도의실천 인증제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는데 귀가 솔깃했어요. 그 것도 원광대학교에서만 시행된다고 하니 굉장히 차별화되고, 유니크하게 느껴졌죠. 평소에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성격이라 이 도의실천 인증제 역시 취득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도 다양한 혜택이 있는데 우선 어학연수, 학적부에 기록되며, 취업 알선, 도덕 장학금 기타 등등 많이 있었어요.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한 번 해보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우선 우리 학교가 도덕 대학이잖아요. 이를 최대한 살려서 지성과 덕성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의실천 인증제 ’는 도덕성이 높은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도덕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객관적으로 인증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본교는 도덕적 실천 항목들을 만들고 위의 덕목들을 수행한 학생들에 한하여 선발하는 다른 곳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원광대학교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도의실천인증제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덕성훈련 기본과정, 선과 인격수련, 사회봉사를 이수하여야 합니다. 위의 3항목들은 각 2점씩 즉 6점을 우선적으로 획득하여야하고, 선택사항으로는 헌혈, 사회봉사 심화활동, 덕성훈련 심화과정, 혹은 선행 및 효행, 나눔의 실천, 화합 운동, 도덕성 관련 수상 실적, 기타 도덕성 관련 사항 중 각 2점씩 2가지 항목을 택하여 총 4점 이상을 취득하여야 하며 전체 총 10점 이상을 획득한 학생은 도의실천 인증 위원회에서 최종 심의 및 심사 면접을 하여 도의 실천 인증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위의 필수 항목 3개와 덕성 훈련 심화과정 2번을 다녀온 후 최종 면접을 통해 도의실천 인증제를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3년을 뒤돌아보면 도의실천 인증제를 받기 위하여 참여하였던 프로그램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비 오는 날,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생 시절 동기들과 함께 하였던 덕성훈련 기본과정, 여러 단과 대학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편안한 자세로 방석 위에 앉아 같이 선을 하고, 마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였던 선과 인격수련, 익산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받는 즐거움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일깨워 준 사회봉사, 무더운 여름 덕성훈련 심화과정으로 완도 훈련원에 참가하여 백팔배도 하고, 산악 자전거 타다가 개인의 부주의로 인해 사고가 나서 응급실에 실려갔던 기억, 두 번째로 갔던 진도 훈련원에서는 스크린을 보며 다함께 목청이 터져라 우리 축구팀을 응원하였던 2010년 남아공월드컵, 각 조끼리 둥그렇게 손을 마주잡고 깊은 밤을 불태웠던 캠프파이어, 각종 레크리에이션 등 수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인 양 필름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그 중 가장 가슴속에 머무는 것은 대학교 1학년 시절, 덕성 훈련 기본 과정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인다라망 체험이었습니다. 인다라망 체험 거울방은 도덕 교육원 지하에 있었습니다. 지시에 따라 거울 방에 들어가보니, 사면이 거울로 된 나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드라망’은 불교에서 유래된 어원인데 이는 인드라 라고 불리우는 신이 사는 곳의 하늘을 덮고 있는 아주 커다란 그물로써 그 그물에는 그물코마다 구슬이 박혀있습니다. 그 구슬에서 나오는 빛이 겹치면서 신비한 세계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인다라망 혹은 거울 방에서 수없이 다양하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였지만 무의식의 세계를 체험하였습니다. 거울이 비춰지는 서로 다른 다양한 형상이 ‘이혜진’이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하듯이 이 세상 역시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곳에서, 나 혼자가 아닌 모두가 잘되는 상생(相生)의 정신과 함께 나아가는 동행(同行)이 어우러져서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행복한 사회를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9. 이 것에 대한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학우님들이 도의실천인증제를 하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우선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봉사 활동을 통해 받는 기쁨보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주는 기쁨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이에 덧붙여서 덕성 훈련을 포함한 많은 프로그램 활동을 통하여 평소에는 만나지 못했을 여러 대학의 학생들과 인연을 맺고 어울려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대학 시절에 잊지 못할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10. 멘토가 있다면?

저의 멘토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항상 든든한 지지자이시고 후원자이시며 힘들고 어려울 대는 가장 먼저 도와주시는 저에게는 최고의 보물입니다. 저는 사소한 일이라도 조언을 구하며, 아버지는 조금 더 크고 넓은 안목으로 저를 바라보시며 방향을 제시해주십니다. 아버지는 항상 곁에서 함께 해주시며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시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꼭 필요한 분이시죠.

11.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신입생 시절의 그 떨림과 설렘을 잊지 못합니다. 학교 오리엔테이션 중 ‘원광대학교의 자랑스러운 동문들’이라는 제목으로 도올 김용옥 선생, 소설가 양귀자, 국가 대표 선수들 등 수 많은 선배님들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다짐했습니다. 저 역시 반드시 자랑스러운 원광대학교 동문이 되어 후배들에게 긍지와 감동을 주겠다고.

저는 조금 더 크고 넓은 세상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하여 국제적인 인맥을 넓히고 원불교, 원광대학교,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등 공신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학교는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이를 알릴 수 있도록 중심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한 글로벌사회에서 소중한 후배들이 세계로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반드시 제가 견인차 역할을 할 것입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교수를 하든, 국제 기구에 들어가든 세계 속의 ‘이혜진’이 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12. 하고 싶은 말

-공포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그 공포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정말 두렵게 만드는 것은 취업, 일자리, 성공 등 공포의 실체가 아니라 그 실체에 대한 무지입니다. 20대는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이제 막 발을 내닫기 시작한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칫국부터 마셔야 떡을 먹게 됩니다. 일단 저지르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을 설정하십시오.

하고싶은 일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를 묻고 또 묻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시공부를 하듯 나 자신에 대해서 먼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목표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단계별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꿈을 키우세요.

R=VD라는 공식이 있습니다.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데, Realization = Vivid Dream 이라는 뜻입니다. 생생하게 목표한 바를 꿈꾸면 다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대학 1학년 때 세웠던 것의 대부분을 성취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믿으세요.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이 보입니다. 여러분이 원광대학교에 온 것은 행운입니다. 이제까지 지나온 일들은 모두 잘 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선택에만 집중하십시오. 분명히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입니다.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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