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거에는 도둑의 동업자로 한솥밥을 먹다가 요새는 합법적인 사업을 내세워 도둑의 돈 세탁을 전담하면서 수수료를 떼어먹는 ‘꾼’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도둑의 소굴에 들어섰다.
“인자는 전부 독식하겠다는 심산이지? 뉘여? 또 나 말고 손잡은 작자가”
난데없는 ‘꾼’의 추궁에 도둑은 어안이 벙벙하여 ‘꾼’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돌연 배알이 뒤틀려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많이 컸다!”
“몰라?”
“뭘 말여. 이 뜬금없는 작자야.”
“물 공원 사업.”
“응? 그거 다 끝난 거 잔아.”
“토탈 20억짜린디. 왜 아무것도 없어? 6억 어디로 빼돌린거여?”
“뭐가 어째? 이 놈 갈수록 태산이네.”
“쌩 까지마. 설계를 무시한 것은 물론이고 수도 없이 설계를 변경했는디. 멀쩡한 것도 눈탱이치는 도사가 이렇게 허술한 걸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고?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꾼’이 꽤 두툼한 서류철을 도둑 앞에 툭 던졌다. 서류를 훓어 보는 도둑의 얼굴이 미묘하게 씰룩이더니 이내 입가에 알수 없는 미소가 스쳤다.
“정말 몰랐다. 너도 알잔아. 요새 큰 건에 매달리느라고. 야생호랑이는 어찌나 으르렁대는지.. 다음은 고사하고 내가 제명에 못 죽겠다.”
“그러게 야생호랑이는 왜 자꾸 건드려? 갈 길이 먼데.. 내가 그렇게 말했건만 이젠 하다하다 이놈 저놈 시켜서까지 자극한다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어쨌든 이 건이나 잘 처리해”
#2
일전에 도둑의 명을 받고 죄 없는 견공의 가정을 파탄 낸 충복이 부름을 받고 달려와 도둑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 건 조사해서 처벌 위원회에 회부해.”
도둑에게서 서류 뭉치를 받아 든 충복의 몸이 충성심에 불타며 부르르 떨었다. 결연한 의지에 불타는 충복의 조사 활동은 속전속결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3
조사를 받고 초죽음이 된 견공은 즉각 물 공원 업자를 만나 하소연 했다.
“날 좀 살려 주세요. 아주 작심을 했어요. 지난번에 걸려서 박살난 견공 짝 나게 생겼어요. 차라리 깨끗하게 사직해야 할까요?”
견공의 처지를 공감하며 같이 납뛰던 업자가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다.
“기다려봐 내가 완장을 한번 만나 볼게. 그동안 납작 엎드려서 가만히 있으라구. 알았어?”
#4
도둑을 만나 금단의 음식을 나누던 업자가 속삭이듯 본론을 꺼냈다.
“두목님. 오래오래 그 자리에 계셔야죠.”
“하이구 힘들어. 그게 내맘대로 되겠어?”
“저야 힘도 없구.. 이번 일로 남은 것도 없지만서두.. 두목님 얼굴 살려드리고 저두 다음 일을 기약하구.. 성금이나 장학금 정도 표나게 한번 대고 싶은데요.”
도둑의 얼굴에 언뜻 화색이 도는가 싶더니 돌연 냉기가 흘렀다.
“뭘 그런.. 별 표도 안나는 일인데.. 그럴 것 까지야..”
“그럼. 생색만 내고 나머진 두목님 살전으로 붙여드리면 어떨까요.”
도둑이 눈을 내려 뜨고 침묵이 흐르자 업자가 안달이 났다.
“”걱정 마십쇼. 견공만 살려 주신다면, 이번 참 일 안한 셈 치겠습니다.“
#5
다음날 도둑은 충복을 불러 하명 했다.
“처벌위원회에 이번 껀 불문에 붙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이리하여 처벌위원회는, “견공이 설계 원안대로 감독하지 않았고, 여러차례 설계를 변경하기는 했으나, 고의성이 발견되지 않은데다 경험이 없었던 탓으로 판단됐다”는 이유로 이 건을 그대로 덮기에 이르렀다.
우화는 우화일 뿐, 이런 일이 익산에서 일어나서야 되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이런 일이 상상되도록 작동되고 있는 익산의 현실이 기막힐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