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에 뿌리가 들린 보리를 밟는다/ 문신처럼 드러나는 온 몸의 신발자국,/ 때로는 혼절의 아픔도 사랑이라 일러주며.// 밟으면 꺾어지고 일으키면 누워버리는,/ 차마 작은 돌 하나도 밀어내지 못하지만/ 그 속에 물결 드높고 함성 또한 뜨거워라.// 꼿꼿이 일어서서 아침해를 겨누면서/보무도 당당하게 이 땅의 슬픔을 이긴/ 보리밥, 민초(民草)의 힘이여! 사투리의 절개여.// 정녕 무서운 힘은 창칼도 붓도 아닌/한 근(斤)도 못 미치는 마음 안에 있는 것/날마다 속을 비우는 저 초록, 꿈을 밟는다. <민병도의 '보리밟기'>
“어릴때부터 보고 자란 보리는, 밟을수록 더 쑥쑥 자라고 밟힐수록 더 크고 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예로부터 가난과 핍박을 꿈과 양심으로 이겨낸 우리 조상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죠.”
제26회 가람시조문학상에 민병도(53) 시조시인의 ‘보리밟기’가 당선됐다.
익산시 가람시조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지난 18일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3명의 시인 작품을 심사해 운영위원회 전원합의로 이같이 결정했다.
민병도 시인의 '보리밟기'는 이른 봄 초록의 생명을 세운 보리를 민초의 힘으로 그려냈으며, 사회성을 담은 내용으로 시조의 한계를 과감하게 떨쳐냈다는 평을 받았다.
김재현(현대시조포럼대표) 심사위원장은 "깊은 서정의 세계를 노래하면서 그 바탕에 시대와 현실의식이 조화롭게 내재되어 있는 수준높은 작품으로, 감각적인 시어와 감성적인 표현이 미가 단연 돋보였다"고 호평했다.
민병도 수상자는 "가람시조문학상이라는 큰 상을, 그것도 최연소로 받게 돼 얼떨떨하다"며, "기존 수상자들이 업적으로 받았다면 앞으로 시조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라는 채찍질로 받겠다"고 겸손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경북 청도 출신인 민 시인은 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최근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시인으로, <개화>편집주간, <시조21>발행인,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한결시조동인>지도, 월간문학 편집위원,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한편 현대시조의 발전에 평생을 바친 가람 이병기 시인을 기리고 시조창작의욕을 드높이기 위해 제정된 가람문학상은 최근 3년간 발표된 우수작품을 대상으로 11명의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 명실공히 시조문학상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시상식은 오는 6월 13일 배산체육공원 준공식에서 상패와 상금 1천만원이 수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