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은나라 출신 기자라는 사람이 들어와 기자 조선(고조선)을 세웠다. 기원전 198년에는 기자의 41대손이자 고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준왕이 연에서 망명해 온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하하여 원래 마한 땅이었던 이 곳 금마에 정착한다.
청동기 및 초기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익산지역에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사건인 ‘준왕의 남하’는 바로, 익산의 2천년 전 시작된 고도(古都)의 역사를 말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준왕이 기준성을 쌓고 스스로를 한(韓)왕이라고 부르면서 이곳을 다스렸으며, 익산 고지도에 보면, 미륵산 뒷자락에 위치한 금마면 신용리 구룡마을에는 과거 준왕이 쌓았다는 기준성이 남아있다고 한다.
또한, 구룡마을은 특이하게도 한강이남 최대 대나무 군락지인 면적 5만㎡의 대나무 숲이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인지 구룡마을 전체가 자연 그대로의 평화로운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으며, 7월의 흐드러진 연둣빛 녹음들은 2천년을 이어온 강인한 생명력을 마음껏 쏟아내며 그 깊이를 더한다.
구룡마을을 가득 메운 초록의 향연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마을 어귀에 마치 마을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선 늠름한 자태의 아름드리 느티나무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외관은 낯선 방문객이 보기에 꽤 인상적이다.
이 나무는 익산시에서 가장 오래된 보호수로 수령은 300년이 넘고, 가슴높이 둘레가 4.6m나 된다. 나무 밑에는 평상마루가 있어 마을주민들의 쉼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이 마을을 찾는 길손에게도 잠시 앉아 쉬어갈 시원한 그늘을 내어준다.
마을 사람들 말에 따르면, 예부터 이 나무의 나뭇잎이 고르게 피면 그 해는 풍년이 들고, 반면 아랫 부분이 먼저 피고 윗부분이 늦게 피면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또, 나뭇잎이 반만 피면 이듬해는 새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한해 농사의 길흉을 점쳐주는 나무로 여겨져 왔다.
이처럼 고조선의 왕도로서 익산의 뿌리 깊은 역사가 서려있는 금마면 구룡마을을 300년 세월동안 지켜온 수호신 느티나무는 ‘이천년 역사고도 익산’의 또 하나의 명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