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알렌 의사가 조선에 첫발을 디뎠던 1884년, 현재 황등교회에 걸려있는 ‘사랑의 종’이 제작되었다.
사랑의 종에는 ‘1884년’이라는 제작연도가 선명하게 찍혀있으며, 이는 미국 감리교와 장로교에서 파송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본격적인 복음전파를 시작한 1885년보다도 한 해 앞선다.
이처럼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기독교역사상 의미 있는 해에 탄생해 국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교회종(추정)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황등교회의 ‘사랑의 종’은 원래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리스퍽 제일교회’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1921년 황등교회를 설립한 계원식 장로의 아들 계일승 목사가 194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계 목사가 우연히 리스퍽 제일교회 예배에 출석하면서 종과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당시 황등교회에 걸려 있던 종이 깨져서 교회종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마침 종 교체를 계획하고 있던 리스퍽 제일교회에 계일승 목사는 종을 한국의 황등교회에 기증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1950년 1월 16일 계일승 목사는 종과 함께 한국행 배를 탔지만,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배는 한국으로 오지 못하고 일본 동경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미국에서 출발한지 약 1년 6개월 만인 1951년 6월 10일, 황등종은 부산 항구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사실 황등교회에는 이전에도 종이 있었다. 지금 사용 중인 ‘사랑의 종’이 세 번째인데, 첫 번째 종은 1942년 태평양전쟁이 터진 이듬해 전쟁물자로 몰수당했다. 그 다음은 계원식 장로가 헌납한 종으로 깨진 종이 두 번째 종이다. 세 번째 종이 바로 미국에서 배를 타고 건너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황등교회를 지키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130살의 ‘사랑의 종’이다.
시 관계자는 “성당 두동교회 ‘ㄱ’자 교회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교회종으로 추정되는 황등교회의 황등종까지 익산시가 4대종교의 성지로서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기독교 명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이 함께 화합하고 다함께 박수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익산 명물찾기>에 시민 여러분들의 더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시간은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거장의 손길
하늘은 자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를
시련의 시간을 통해 단련시키듯
시간을 견뎌낸 것들은 빛나는 얼굴이 살아있다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