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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꿰매요~ ‘황동조각보’

조각보에 푹 빠진 할머니들, 익산시생활문화예술동호회 ‘황동조각보’

등록일 2013년11월26일 18시56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비뚤배뚤한 천 조각을 한 땀 한 땀 이어붙이는 할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빨강과 감색, 치자색과 연분홍... 대충 같지만 고도의 계산이 숨은 듯 이리저리 색을 배치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버려질 폐물에 정성을 덧입혀 만든 조각보, 그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있어 찾아가봤다.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황동마을 할머니들과 부녀회원 20여명은 지난해 문화이모작 사업을 통해 조각보를 처음 접하게 됐다. 
‘슬슬(Slow Slow)놀이터’, 이름 그대로 천천히 바느질하며 수다 떨고 노는 의미로 시작된 사업이었다. 
마을 아낙들은 이장 최정규 씨 집으로 모여 조각보 수업을 받았고 서동축제 등 지역축제에 참여하며 솜씨, 맵씨를 뽐냈다. 내친김에 ‘황동조각보’란 생활문화동호회도 결성했다. 
농사일이 바빠 처음 조각보수업을 받을 때보다 수는 줄었지만 현재도 10여명이 회원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50대 젊은 아낙(?)부터 최고령 84세 할머니까지 연령대는 다양해도 조각보에 대한 애정만큼은 한결같다.

“옛날에는 아버지들이 여자가 무슨 학교를 다니냐고 해서 집에만 있었다. 집안일 돕고 밭일하고 애기나 보고 시간나면 놀거리가 없으니, 바느질을 했다.” (이영순, 81)

“그 시절엔 옷 가게 대신 삼베나 모시 같은 거를 파는 옷감 집, 비단집이 있었다. 명절이나 친척 결혼식이면 화려한 옷감을 떠다 옷을 해 입었다. 옷 만들고 나면 남은 자투리 천은 모아 보자기를 만들었는데 그게 조각보다.” (임순정, 66)

조각보를 만드는 내내 할머니들에게선 어릴 적 이야기들이 퐁퐁 솟아난다. 기억을 꿰어 세월을 수놓는 손길이 꼼꼼하고 야무지다. 몇 십 년도 더된 옛일이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라 들춰보는 게 껄끄러울 법도 한데 웬걸 ‘추억’이란다. 전보다 편해진 세상, 느릿느릿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하는 바느질이 고되게 느껴질 것 같은데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모든 게 귀하던 시절, 밥 한 톨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천 조각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옛날 생각이 난다. 조각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느냐. 아끼고 알뜰살뜰 살아온 우리 어머니 모습 같은 거.” (송영희, 73)

바느질과 함께 한 시간만큼 솜씨도 만만치 않다. 문화이모작 사업 당시, 실기강사에게 조명인테리어소품과 침구물품 만드는 두어 차례 배웠는데 금세 청출어람의 실력을 뽐냈단다. 이렇게 탄생한 수십 점의 작품은 지난해와 올해 익산서동축제 부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일일이 수작업을 해 만든 베개와 이불커버, 보자기, 전부 인기가 많았다. 하루 사이 물건이 동이 나니 할머니들이 신기해서 그 다음 날 팔 물건들은 밤을 새다시피 해 만들었다. 재미로 만든 물건이 이렇게 인기를 끌지 몰랐는데, 할머니들 모두 놀랬다.” (이선숙, 54)

주 고객은 젊은 층보다는 나이 지긋한 이들이 많았다. 특히, 밥상보가 대인기였다.

“밥상보는 요즘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예전에는 반찬 그릇에 뚜껑이 따로 없어서 다 밥상보를 사용했다. 냉장고도 없고 마침 밭에 나가거나 일보러 갈 때 아들이 온다고 하면 상을 다 차려놓고 밥상보를 덮어놨다. 쉬 먹을 수 있도록 한 거였는데 나이든 사람은 그게 기억났는지 다 사가더라.” (임순정, 66)

황동조각보 회원들은 조각보- 단순 보자기 뿐 아니라 커튼, 밥상보, 이불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구상해 만든다. 
사용하는 천도 구입한 것이 아니라 한복집에서 얻어온 자투리 천이다. 천을 가져와서는 직접 쓸 만한 것을 고르고, 색 배치와 모양을 잡아 직접 작품을 만들어나간다. 
지난해까지는 100% 수작업이었지만 요즘은 몇몇이 눈이 침침하고 손마디가 아파 재봉틀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정성은 뒤쳐지지 않는다. 
본래 조각보의 ‘보(褓)’는 이와 발음이 유사한 복(福)이라는 한자와 뜻이 통한다 하지 않던가. 복을 싸서 선물하려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은 축제 때 일부를 판매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자식들에게 주고, 집집마다 걸어놓으며 취미생활로 이뤄지고 있다. 몇 점은 11월 22일부터는 28일까지 익산 W미술관에 열리는 익산시생활문화예술동회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이웃과 가까워지고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조각보가 있어 황동마을엔 오늘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앞으로 마을체험관인 ‘방문자센터’가 들어서면 ‘조각보’ 수강에 나서볼까 작은 희망을 풀어놓는 할머니들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소통뉴스 이백순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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