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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은 무왕의 도시다

2012 전북방문의 해 익산 가볼만한 곳 - 백제의 숨결 익산둘레길③ - 무왕길

등록일 2012년02월22일 14시08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길은 소통의 시작이고 종결점이다. 소통이 화두인 최근 지리산둘레길, 제주올레 등 수많은 길들이 뜨고 있다. 그럼 익산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여 걸쳐 조성된 ‘백제의 숨결! 익산 둘레길’이 있다. 익산의 다양한 역사문화탐방, 체험, 휴양이 어우러진 이 길은 함라산길, 강변포구길, 성당포구길, 무왕길, 미륵산길, 용화산길 등 6개 코스 총연장 99km이다.

한번에 이 길에 숨겨진 매력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익산의 역사와 자연, 선조의 삶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짚어보는 데는 조금 느린 호흡이 필요하다.

글 싣는 순서
1부. 발아래 산들강이 놓이다 _ 함라산길
2부. 익산은 포구다 _ 강변포구길 & 성당포구길
3부. 익산은 무왕의 도시다 _ 무왕길
4부. 1400년 전 백제인을 만나다 _ 미륵산길 & 용화산길

# 무왕을 길 위에서 만나다.

금강을 따라 걷는 포구길에 이어 이른 봄 무왕을 만나러 길을 떠나면 어떨까?!

익산은 무왕의 도시이다. 마룡지, 서동생가터, 익산쌍릉, 미륵사지, 제석사지, 왕궁리유적 등 제30대 무왕(600~640) 서동의 탄생과 사랑 그리고 황금기가 있는 곳이다.

무왕길1은 익산쌍릉을 출발하여 익산토성, 미륵사지, 구룡마을 대나무숲, 서동공원, 고도리석불입상, 왕궁리유적전시관, 익산쌍릉에 이르는 총 26.7km이다. 소요시간은 6시간 20분이다.

무왕길2는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 출발하여 제석사지, 서동생가터, 익산쌍릉에 이르는 8.3km로 소요시간은 2시간 40분이 소요된다.

# 서동과 선화 영원한 사랑이 잠들다 _ 익산쌍릉

서동과 선화의 사랑은 죽어서도 영원한 것일까?

익산 쌍릉은(사적 제87호) 바로 무왕과 그의 왕비릉이다. 쌍릉이라고 해서 2개의 능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쌍릉은 직선거리로 약 200여 미터쯤 떨어져 있다.

1917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다행히 왕릉 안에서 나무 관 일부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으며 현재는 전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무덤 안의 구조는 백제 후기 굴식돌방무덤이며 봉분과 돌방의 크기가 큰 북쪽 능을 무왕릉, 상대적으로 작은 남쪽의 능이 왕비릉이다.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주변에 솔숲이 울창하기 때문이다. 더 없이 따스한 곳이기도 하다. 무왕은 죽어서도 200m 죽어서도 찬바람 맞으며 선화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익산쌍릉 석왕동 산 55, 56번지

# 서동 다섯 개의 금덩이로 인심을 얻다 _ 익산토성(오금산성)

무왕릉을 나와 아스팔트길을 10여 분 정도 걷다보면 동그라미라는 재활원이 있고 삼정원이라는 복지관이 있다. 익산토성표지판이 나오면 이를 끼고 산길을 따라 200미터 정도 오르면 익산토성이 나온다.

오금산에 자리하고 있어 오금산성이라고도 하고 보덕국의 왕 안승이 670년부터 684년까지 익산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보덕성'이라고도 한다.

오금산은 금덩이 다섯 개가 나왔다 해서 붙여진 산 지명이다. 서동이 오금산에서 큰 금덩이 다섯 덩이를 얻게 된 것은 홀어머니에게 효심이 커서 그랬다는 말도 전해온다. 서동은 왕이 된 후에도 고향인 금마에 자주 오갔으며 오금산에다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오금사를 세웠다고 한다.

토성에서 잠시 휴식을 뒤로하고 능선을 따라 걷다 나무숲을 지나면 검은 차일로 그늘을 만들어 준 인삼밭을 스쳐 지나친다. 때로는 천변의 방죽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발목을 뒤덮을 정도로 무성한 풀숲을 헤치며 논둑을 걷기도 한다. 그리고 금마면 용순마을이다. 딸기 재배를 많이 하는 용순 마을에서 12월말부터 5월까지는 바로 딴 딸기 맛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역시 여행의 큰 즐거움은 먹을거리다.

# 하루 밤사이에 만들다 _ 미륵사지

하루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로 가는 도중 용화산 아래 큰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 미륵삼존이 연못 속에서 나타나 수레를 멈추고 절을 하였다.

부인이 왕에게 이르기를 이곳에 큰 절을 세우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왕이 허락하고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을 메우는 일을 묻자 신통력으로 하루 밤사이에 산을 헐어 못을 메우고 평지로 만들었다. 이내 미륵삼존을 법상으로 하여 전, 탑, 낭, 무를 각각 세 곳에 만들고 미륵사라는 편액을 달았다. 지금도 그 절이 있다」라고 『삼국유사』 무왕조에 미륵사의 건립 과정과 사찰 건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미륵사지에는 3개의 탑이 있었는데, 중앙에는 목탑, 동․서측에는 석탑이 위치하고 있었다. 동․서측의 석탑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는 형태로서 석탑의 나라라고 하는 한국석탑의 시원형식이다.

미륵사지에는 중문 앞에 동서 90m 거리를 두고 2기의 당간지주가 나란히 서 있다. 당간에는 기를 달아 사찰의 종풍을 나타내거나 사찰을 표시하기 위한 흔적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석당간은 고려시대 이후의 것으로 미륵사지 석당간이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미륵사지 당간이 우리나라 석당간의 시원형태로 추정 된다.

* 미륵사지 금마면 기양리 104-1

# 나도 백제왕도다 _ 왕궁리유적

왕궁리유적에는 백제 무왕시대의 왕궁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왕궁리 일원은 오래 전부터 유적, 유물들을 발굴 중에 있으며, 최근까지도 왕궁의 흔적임을 알려주는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다. 무엇보다 왕궁리유적전시관에 들려보면 발굴과정과 발굴된 유적 등 백제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왕궁리 발굴현장을 보기 전에 우선 유적전시관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2008년 12월 개관된 유적전시관은 영상실,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체험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공방에서 생산한 금과 유리제품, 왕궁 건물에 사용하였던 연화문 수막새, 수부명 인장기와를 비롯해 대형 토기와 사찰 관련 유물 등 약 4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유적지에서 발굴된 왕궁의 외곽 담과 왕이 정사를 돌보고 의식을 행하던 정전 등 14개의 건물지,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과 공방터, 국내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 화장실 유적 등이 눈길을 끈다. 고대 왕궁 중 처음으로 발견된 것들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익산읍지' 등의 문헌에는 이곳을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別都)를 세 운 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적고 있다. 현재 왕궁터에는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289호)이 남아 있다. 벚꽃이 눈처럼 하얗게 피던 2009년 4월 어느 날 배우 배용준 씨가 왕궁리유적에 다녀갔다.

* 왕궁리 유적전시관 : 왕궁면 궁성로 670 ☎ 063-859-4631~2

http://wg.iksan.go.kr/home 1월 1일, 월요일 휴관

# 백제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다! 제석사지

왕궁리 유적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석사지(사적 제405호)가 있다.

왕궁평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다. 24,218제곱미터(7,400평) 정도의 드넓은 면적으로, 오래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제석들'이라고 불렀다. 왕궁 평성에 궁성을 조성한 무왕은 당시 미래불인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고 궁궐 근처에서 '제석천'을 주로 모시는 내불당인 제석사를 창건하여 왕실의 번창과 안녕을 기원하고자 했다.

제석사의 역사적인 고증은 '관세음응험기‘에 잘 나타나 있다. 2007년부터는 전면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탑 터에서 제석 사라고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 이름이 밝혀졌다. 국내에 몇 되지 않는 백제 절터로 문헌기록에서 절을 지은 시기와 폐허가 된 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 무왕대의 왕궁평 유적과의 관련성, 백제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나왔다는 사실로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현재 유적 발굴 작업 중이며 오래된 수령의 소나무가 남아 연륜을 느끼게 한다. 약간 올라간 구릉은 7층 탑이 있던 자리 로 장방형의 커다란 돌이 둘로 나뉘어져 있다. 돌 중앙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것은 탑 아래 심초석과 같은 것으로 사리장치를 두었던 곳이다.

* 제석사지 왕궁면 왕궁리 247-1

# 용의 아들이 태어나다_서동생가터

제석사지를 나와 궁평교, 기세배 전수관, 금마검문소를 지나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소나무 언덕이 서동생가터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구간이라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그리고 '연 방죽'이란 넓은 못이 있다. 연방죽은 말 그대로 연꽃이 자라는 못이다. 연방죽 한쪽에는 마룡지라는 곳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연방죽을 확장하면서 연방죽과 마룡지는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지금은 하나의 못이나 다름없다. 연방죽 안쪽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자라는 곳이 마룡지라고 보면 된다.

바로 이곳이 서동의 어머니가 검은 용과 통정하여 서동을 잉태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현재 마을이나 집터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서동의 설화가 전해지는 마룡지 옆이 서동이 태어난 곳일 거란 추측은 당연한 일이다.

# 구룡마을 대나무숲 & 뜬바위

구룡마을에는 5만㎡ 규모의 한반도 최대 대나무 숲이 있다. 과거 이 대나무는 주민들에게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대나무로 죽부인이나 공예품 등을 만들어 팔았는데, 강경 오일장은 물론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2005년 겨울 냉해를 입어 귀중한 대나무들이 고사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마을주민과 ‘전북 생명의 숲’이 함께 노력해 새로이 대나무 숲을 가꾸는 중이다.

이 대나무 숲은 생명의 광장을 중심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제법 너른 광장에는 우물 터가 있고 안쪽에는 쓰러진 나무와 나무데크가 있다. 인기 드라마 추노의 촬영장소였다. 주인공 송태하가 김혜원를 보호하기 위하여 백호 일행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 다친 김혜원을 업고 숲길을 지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대나무 숲 산책이 좋은 이유는 다른 곳보다 10배 이상 많은 음이온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음이온은 숲과 강, 해변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사람에게 ‘아! 기분이 좋다’라고 하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대나무 숲과 쌍벽을 이루는 뜬바위가 있다. 큰 바위 두개가 얹혀 있는데 정말 우주선을 닮아 있었다. 뜬바위는 미륵산에 살던 장수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근처의 바위를 집어다가 바위 위에 올려놓아서 생겼다고 한다. 윗돌 위에는 장수가 오줌을 싸서 흘렀던 골과 반짇고리, 가위를 놓았던 가위자리 모양이 패여 있다. 뜬바위는 위에 얹혀 있는 바위가 베를 짜는 데 쓰는 북을 닮았다고 하여 ‘북바위’, 커다란 바위가 또 다른 바위에 얹혀 있다고 해서 ‘얹힌바위’ 윗돌과 밑돌이 떠있다고 하여 ‘뜬바위’라고 불린다.

평소에는 윗돌과 밑돌이 딱 닿아 있지만, 섣달 그믐날 자정이 되면 사이가 떠서 동네 사람들이 양쪽으로 명주실을 쥐고 두 바위 사이에 넣고 잡아당기면 걸리지 않고 통과된다고 한다.

#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야기가 있다_ 서동공원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백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서동공원은 금마저수지를 끼고 4만 여평의 부지에 조성된 것으로 조각공원과 전망대 등 각종 휴식공간이 있어 놀이와 산책 등 나들이 코스로 적합하다. 금마저수지는 미륵산 정상에서 보면 한반도를 쏙 빼닮았다. 그래서 지도연못이라 부른다.

조각공원에는 무왕상, 서동·선화입상 및 부도, 12지 신상, 기타 조각 작품 등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일명 조각공원으로 불리고 있으며 860여 평의 잔디광장을 비롯한 미륵광장, 수변광장, 야외무대는 철쭉 왕벗나무 외 다양한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서동공원 내에 마한의 역사와 생활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마한관이 있다.

* 서동공원 금마면 동고도리 526 ☎ 063-859-4633

# 견우와 직녀가 익산에 있다 _ 고도리 석불입상

2012년 1월 22일 밤, 그들이 만날까?!

금마면 남쪽 1km 지점 논 가운데,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200m 정도 떨어져 마주 보고 서 있는 2구의 석상이 있다. 두 석상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같기도 하고 얼굴 표정이 꼭 부부의 모습이다.

그래선지 두 석상을 두고 이 마을에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두 석상이 강물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음력 섣달 그믐날 만나 일 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또 다시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이야기다.

이 석상은 하나의 돌기둥에 머리에 슨 관부터 대좌까지를 조각하였는데 뒤에서 보면 네모콜 모자를 쓴 네모난 기둥으로 보일 정도로 윤곽이 분명하지 않다.

이마에 백호가 없고 목에 삼도가 없으며 두 손을 모아 잡고 있는 모습도 불상의 모습은 아니다. 이런 연유로 주민들은 ‘석인상’ 또는 ‘인석(人石)’이라고 부른다.

* 고도리 석불입상 금마면 동고도리 1086, 금마면 서고도리 400-2

무왕길 코스 및 여행정보

☞무왕길1(18.4Km) 도보 6시간 20분

익산쌍릉 -2.0km→ 익산토성 -3.3km→ 미륵사지-3.6km→ 뜬바위 -0.2km→ 구룡마을대나무숲 -2.4km→ 서동공원 -2.9km→ 고도리석불입상 -1.3km→ 왕궁리유적전시관 -2.7km→ 익산쌍릉

☞무왕길2(8.3km) 도보 2시간 40분

왕궁리유적전시관 -2.8km→ 제석사지 -4.3km→ 서동생가터-1.2km→ 익산쌍릉(익산토성)

☞무왕길자전거코스(8.0km))

익산쌍릉 -1.7km→ 익산토성 -1.2km→ 서동생가터-1.1km→ 고도리석불입상 -1.3km→ 왕궁리유적전시관 -2.7km→ 익산쌍릉

익산관광 http://iksan.gojb.net

익산시청 문화관광과 ☎ 063-859-5797

 

소통뉴스 정명열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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