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했던가.
검찰 수사를 통해, 뇌물을 공여한 업자와 이를 알선한 브로커는 구속됐지만 이들과의 유착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던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혐의는 단 한명도 밝혀내지 못하고 수사가 한계점을 드러내면서, 시장부터 부시장, 국·과장까지 결재라인이 줄지어 있는데도 사실상 자살한 ‘6급 공무원’이 모든 것을 뒤집어 쓴(?) 형국이 됐다.
장장 8개월 동안에 걸쳐 익산 정·관계 전방위로 진행됐던 수사치고는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지 못하고 많은 의혹만 남긴 이른바 ‘용두사미 수사’가 된 셈이다.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18일 에스코 비리 사건과 관련, 사업 시공사로 선정된 J토건 대표 진모씨와 간부 김모씨, 브로커 노모씨 등 3명을 구속하고 하청업체 간부인 정모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같이 검찰은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업자와 브로커를 줄줄이 구속·입건했지만, 이들과 결탁내지는 유착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이렇다 할 진척을 보지 못했다.
실제, 검찰은 그간 에스코 사업자 선정 과정을 담당했던 익산시청 국·과장 등 10명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지만 아무런 혐의도 입증해내지 못했다.
이처럼 검찰 수사 결과가 뇌물을 건넨 사람은 있지만 받은 사람은 없는 모양새로 석연치 않게 종결되면서 120억 원대의 대규모 사업이 계장급 공무원 한 사람의 손에 좌지우지된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만들었다.
윤계장 ‘유서자료’ 못 찾아 ‘미궁’
특히, 윤모 계장이 자살하면서 남겼던 ‘특정 자료(유서에 적시)’를 찾아내지 못하면서 이번 사건의 실체는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감사원과 경찰 등에 따르면, 익산시청 윤 계장은 1500만원을 업자로부터 수수한 사실이 포착되자 지난 4월 12일 자택에서 유서 한 장을 남겨 놓고 목을 매 숨졌다.
이 유서에는 "내가 서랍에 남긴 자료를 가지고 모 시장 캠프에 찾아가서 흥정을 해라. 흥정을 해서 나온 돈을 가지고 생활해라. 서랍 안에 자료가 있으니 이걸 찾아 동료를 만나 대비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유서에 언급한 문제의 자료를 찾기 위해 고인의 사무실 책상 등을 수색했지만 서류 확보에 실패했다. 문제의 자료가 누군가에 의해 빼돌려졌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열쇠일 가능성이 높은 ‘유서 자료’를 찾아내지 못하면서 수사당국은 사실상 이번 사건의 ‘몸통’에 근접조차 못했다.
브로커, 업자 등 검은돈 흐름 추적 ‘한계’
여기에, 업자에게 1억8천만원을 받아 정관계 로비를 담당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이 진행중인 브로커 노모씨가 자신과 관련된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입을 굳게 닫고 있는 것도 ‘사건의 실체규명’을 어렵게 하는 한 원인으로 꼽힌다.
검찰은 에스코사업자 선정을 전후로 익산시청 공무원에게 수천만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J토건 대표 진모씨를 지난 8월 20일 구속한 데 이어, 지난 9월에도 업체대표 진씨가 빼돌린 돈의 일부를 공무원에게 건넨 혐의로 같은 회사 본부장 김모씨(前 익산시장 비서)를 전격 구속했다.
검찰은 브로커 노모씨에 대해서도 “2009년 8월초 김모씨로부터 에스코사업 수주를 부탁 받고 익산시청 윤모계장에게 (승진을 도와주는 조건 등)영향력을 행사, (김모씨에게)하도급 공사를 알선하고 2009년 12월부터 3회에 걸쳐 1억8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로 지난 10월 구속했다.
검찰은 이 같이 하청 업체 대표와 직원의 잇따라 구속시킨데 이어 핵심 연결고리인 브로커 노모씨를 구속하면서 수사가 급진전되는 듯했다. 브로커 노씨가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2006년 이한수 익산시장이 선거를 치를 당시 선거 캠프에 합류하는 등 정치권에 인맥이 많은 인물로 거론돼 왔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 대상에 포함된 여러 업체의 계좌에서 약 10억원이 출금된 것으로 파악하고, 노씨와 연결되는 정치인과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장장 3개월 넘도록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지만 이 자금의 흐름을 찾아내지 못했다.
검찰은 이들이 계좌입금 방식을 피하는 방법으로 현금을 철저하게 세탁해 증거를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정관계인사와 경제인들이 유착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번 사건은 '유서자료'를 찾지못하고 검은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데 실패하는 등 수사의 한계점을 드러내면서, 겨우 업자와 브로커 등 3명을 구속하고 하청업체 관련자 5명을 불구속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반쪽짜리 수사로 일단락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결제선상에 있는 고위공무원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자살한 6급 공무원만이 이 모든 사건의 몸통으로 사실상 결론지어지는 등 상식밖의 기형 수사로 마무리됐다.
이 때문에 이번 에스코비리에 대한 검찰수사는 풀리지 않는 의혹만 무성히 남긴 반쪽자리 '용두사미'수사란 비판과 오명을 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