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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죽음의 자리를 예술과 역사의 공간으로

[기고] 작가 김준엽(‘시민을 위한 여행’ 저자)

등록일 2024년03월13일 17시2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작가 김준엽(‘시민을 위한 여행’ 저자) 프랑스는 매년 8천만 명 내외의 해외 관광객이 방문하고, 한화로 100조 원을 넘나드는 관광 수입을 기록하는 세계 1위의 관광대국입니다. 이 나라의 관문인 수도 파리는 에펠탑, 개선문, 노트르담 사원,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등 세계 최고의 미술 작품과 역사 유물이 넘쳐나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는 1789년 시민혁명을 통해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개인’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킨 나라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어디서나 속박되어 있다’라고 일갈했으며, 이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격변의 시대로 인도했습니다. 근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처럼 근대의 여명이 떠오른 프랑스 파리는 최초의 근대 시민들이 살다 간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파리를 방문하려는 지인들에게 오늘의 파리가 있게 한 ‘시민’이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에 꼭 방문하라고 권유하곤 합니다. 파리엔 세계적인 공동묘지 세 곳이 있습니다. 페르 라셰즈, 몽파르나스, 몽마르뜨르 공동묘지가 그곳입니다.

 

첫 번째로 페리 라셰즈 묘지는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을 빛낸 인물들을 위한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묘지이며, 파리 최대 최초의 정원식 공동묘지입니다. 1804년에 문을 연 페리 라셰즈 공동묘지엔 작곡가 쇼팽, 극작가 몰리에르, 배우 이브 몽탕, 화가 피사로, 모딜리아니, 가수 에데트 피아프,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는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묘지도 이곳에 있습니다. 또한, 60년대 록스타 짐 모리슨도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두 번째 몽파르나스 묘지는 182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페리 라셰즈 공동묘지의 명성에 밀려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지만, 이곳에서 잠든 인물들의 면면은 결국 페리 라셰즈에 밀리지 않습니다. 이곳엔 시인 보들레르, 작가 기 드 모파상,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 조각가 브란쿠시, 사진작가 만레이, 시트로엥자동차의 시트로엥 가문의 묘, 반유대군국주의의 피해자 드레퓌스 대위, 세계 지성의 상징 장 폴 사르트르와 그의 연인이자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 가수 세르주 갱스부르,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바르톨디, 엄지손가락으로 유명한 조각가 세자르, 자크 시라크 대통령 등 세계적인 인물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1798년 만들어진 몽마르트르 묘지입니다. 이곳엔 드레퓌스 사건을 사회 전면에 등장시킨 사설 ‘나는 고발한다’의 저자 에밀 졸라, 소설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알렉산드르 뒤마(2002년 팡테옹으로 이장), 소설가 스탕달, 작곡가 오펜바흐와 베를리오즈,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 등 수많은 예술가, 작가,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방문하기 전에 구글 지도에서 세 곳의 위치를 찾다 보면, 세 군데 모두 도시 중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죽음에 대한 우리 전통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다름에 대한 이해와 포용은 여행의 근간이기에 도심 속 정원 같은 묘지의 풍경은 여행자에게 많은 교훈을 전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조각과 미술 작품으로 꾸며진 묘지 사이 사이를 걷다 보면 잠들어 있는 수많은 인물을 통해 프랑스 근현대사가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또한, 주목할 만한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과 함께 잠든 수많은 평범한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세 군데 공동묘지는 특별한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일반인들도 함께 안장된 시민들의 공동묘지입니다. 또 하나는 공간의 평등입니다. 망자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과 관계없이 거의 비슷한 면적으로 묘소를 조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 공동묘지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인물박물관 같은 묘지를 빠져나오다 보면, 예술을 꽃피우고, 자유가 만개한 오늘의 파리를 인류에게 선물하고 떠나간 파리시민과 예술인, 작가, 음악가, 정치인 등 잠들어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어느새 스며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 김준엽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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